주방은 ‘인간’ 셰프에게 타고난 나약함을 허용하고 있는가

인간은 타고나길 나약한 존재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 에피메테우스가 동물을 창조한 뒤 힘, 속도와 같은 모든 능력들을 선사한다. 막상 인간의 차례가 되자 에피메테우스의 수중에는 남은 것이 없다. 인간을 사랑했던 에피메테우스의 형제 프로메테우스는 그 대안으로 인간에게 불을 선사하지만, 날 것으로서의 인간은 야생의 동물에 비해 한참 미약하게 남았다. 성서의 창세기에서도 역시 아담과 이브는 ‘완성되지 않은 자’, ‘죄를 지은 자’들로서 인간의 씨앗을 퍼뜨린다.

지난해 미쉐린가이드가 서울편을 발간한다며 한국 요식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때, 그 해 초에 마주한 기사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미쉐린 3성 셰프 브누아 비올리에Benoît Violier가 미쉐린가이드의 새 평점 발표 하루 전날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사고사나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새 평가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한 자살에 무게를 실었다.”

이후 머리 한 구석에만 머물러 있을 뿐, 한참을 꺼내기 어려웠던 오늘의 주제는 “주방은 ‘인간’ 셰프에게 타고난 나약함을 허용하고 있는가”이다.

타인에 의해 평가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일은 요식업계의 숙명과도 같다. 평가는 ‘타인을 위한’ 식사를 차려내는 셰프의 업(業)이 가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문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 평가의 목적이 박수갈채의 칭송보다 날선 단죄로 바뀌었다는 데서 온다.

스타 셰프가 평가의 단두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비올리에가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미쉐린 3성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Bernard Loiseau는 2003년 52세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레스토랑 평가서인 고미요가이드가 그의 식당 등급을 하향한 데 이어, 미쉐린이 별 3개에서 2개로 강등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루아조가 죽은 이후 그의 식당은 25년 만에 별 2개로 내려앉았다. 프랑스 최고 셰프 중 한명인 폴 보퀴즈Paul Bocuse는 루아조가 죽었을 때 “음식에 대한 기계적 평가가 우리에게서 그를 빼앗아갔다”고 한탄했다.

브누아 비올리에(Benoît Violier)의 생전 모습
베르나르 루아조(Bernard Loiseau)의 생전 모습

영국의 음식 비평가 윌리엄 시트웰Wiliam Sitwell은 “훌륭한 셰프는 모두 훌륭하고 맛 좋은 음식을 만들고 싶어한다”며 “그러나 ‘미쉐린 스타 셰프’라는 수식어가 붙은 후에는 완벽을 향한 여정이 위험한 강박으로 변해버린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톱셰프Top Chef’의 심사위원인 휴 애치슨Hugh Acheson 역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요식업계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고, 우린 끊임없이 현미경 아래 놓여있다”며 “사람들이 셰프나 식당에 대해 평가할 때 그들이 한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고 말했다.

다니엘 패터슨(Daniel Patterson)

‘철인(鐵人)’ 셰프에 대한 요구는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셰프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펄펄 끓는 쇳물에 집어넣었다 빼내기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퀴진을 이끄는 스타 셰프 다니엘 패터슨Daniel Patterson은 2016년에 열렸던 한 컨퍼런스MAD Conference에서 자신의 정신 질환 문제를 고백하며, 셰프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성을 위한 광기의 신화”를 언급했다.

패터슨은 해당 연설에서 “내가 정상적인normal 기분이나 감정 상태를 가지는 순간,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라며 “창조성은 완전히 제어되지 않는 상태에서 발현되며, 그 근원도 모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 이래 광기는 창조성과의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취급되어왔다. 플라톤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것 중에서 광기는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셰프의 일은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와 신선한 만족을 요구한다. 때문에 셰프들에게 가장 중요한 직업적 자질을 꼽으라면 당연히 창조성이 빠질 리 없다. 문제는 창조성을 위한다는 목적 하에 광기의 상태가 의도적으로 일상 내내 추구될 때 온다. 창조성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성질이지 인간 그 자체의 성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프들은 창조의 바다에 잠겨있기 위해 종일 비정상적인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

한 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평가와 예술적 창조를 위한 광기는 셰프에게 심리적 과욕과 무리를 계속 반복하게 한다. 사실 셰프라는 업(業)을 선택한 이상 이러한 심리적 부담감을 완전히 피하기란 불가다. 그렇다면 미치지 않고 ‘철인(鐵人)’ 셰프로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마음과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업 환경, 주방의 공기가 여기서 중요하다.

영화 <라따뚜이(Ratatouille)>의 한 장면

주방은 외부의 평가와 셰프 내부의 창조성을 매개하는 공간이다. 이 매개된 주방 환경에서 셰프는 심리적 긴장의 완충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고충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주방 문화는 마음의 병을 키운다. 셰프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져온 음식평론가 캣 킨스먼Kat Kinsman은 “많은 주방 노동자들이 우울과 불안, 약물 남용 문제를 겪고 있다”며 “나약함을 허용하지 않는 매우 마초적인 문화”를 그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소위 현실의 창이라 일컬어지는 TV나 영화 등의 대중매체가 비추는 주방의 모습은 강박적이고, 위압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히스테릭하기까지 하다. 셰프를 주제로 한 경쟁적 TV 프로그램들이나 완벽주의 영화들이 비교적 성공 가도를 걸으면서, 거칠고 강박적인 주방이 셰프의 출세에 필수적 자질로 오인되기도 한다. 물론 칼과 포크 등 흉기를 들고 불과 씨름하는 주방은 일정 정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수준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잊게 만들만큼 모욕적이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비올리에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을 때 워싱턴포스트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과거 비올리에의 발언을 인용하며, 그가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믿는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타고나길 나약한 존재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일을 하던 우리의 본질은 나약한 인간이다. 우리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 나약함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 나약함을 인정하고 보듬어 살아 왔기 때문이다.

인간미(人間味)의 한자어 뜻을 풀이하면 “인간다운 따뜻한 맛”이라는 뜻이다. 인간미(人間味)의 ‘미(味)’자는 ‘아름다울 미(美)’가 아니라 ‘맛 미(味)’자를 사용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고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인간미가 넘쳐나는 주방에서 내어진, 그 인간미를 담은 요리를 더 많이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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