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상에게 감사할 줄을 모른다. 지금의 우리를 존재케 해준 최초의 생명체, 뭍으로 올라왔던 물고기, 호모 사피엔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배은망덕함은 우리 후손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다. 그들도 우리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원시적인 모습을 하찮게 깔보며 웃음거리로 여기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먼 미래에는 지금의 종과는 전혀 다른 post-human이 만들어질 것이다. post에는 여러 뜻이 있다. 시기적으로 후대에 오는 것이 일차적인 의미지만, 후대는 선대를 부정하면서 발전하기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있고, 선대의 한계점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포스트 휴먼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것이며, 효율과 속도 측면에서 우월할 것이고, 현대인이 인지하는 것보다 초월적인 차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생인류가 미래인류보다 저급한 존재라는 사실에 낙담하는 것은 잘못이다. 3,000년대에 미래인류로 태어났다고 해보자. 미래 인류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할까? 비교와 낙담의 태도가 여전하다면 4,000년대의 미래인류에 비해 저급한 존재라는 사실에 낙담하고 있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오만한 욕심이자,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 불만족으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이런 생각의 오류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허무주의라는 장치가 있다. 허무주의에 빠진 존재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삶의 목표를 잃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만든다.
과거의 조상도, 현생 인류도, 미래 인류도 변치 않는 공통점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선의 의지가 지금에 다다르게 했고, 미래인류를 만들어낼 것이다. 짧은 현생을 살아가는 중에도 조금씩의 진척이 이뤄지고 있는데 다음 네 가지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 같다.
있는 것을 더 잘하게 한다.
있는 것을 대리수행하게 한다.
없는 것을 보완한다.
차원이 다른 개념으로 transform한다.
각각 구체적인 예를 들면 너무 당연하고 심심한 얘기가 되어 썼다 지운다. 슈퍼히어로에 이 개선의 의지가 모두 투영되어 보여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