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개선의 6단계와 사이클

① 100번의 노가다

Do things that don’t scale. 확장성이 없는 일을 하라. 왜냐면 확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일은 이미 확장성을 갖추었거나, 쉽게 확장될 수 있거나, 이미 누군가가 확장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을 해내더라도 효용이 없는 일이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은 확장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영역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행위의 미분

“콜라병을 따고, 컵에 따라서, 마신다”는 3단계로 보이는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면 147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행위를 최소 단위로 미분하는 것은 테일러리즘의 첫 단계다. 행위를 정의할 때 위계가 [과업단위, 수행단위, 작동단위]중에서 일관적이어야 한다.
일을 더 잘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100번의 노가다 과정을 거치면서 행위를 통합하기도, 지름길을 만들기도, 요소들의 배치를 변경하는 요령을 부리게 되며, 도구의 필요성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일을 더 잘하려는 노력 없이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했다면 비효율을 숙달하게 되고, 이 경우 미분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미분하는 행위는 일을 올바르게 해내는 것은 물론, 더 잘해내기 위한 노력이 반영된 행위 최적화가 이뤄졌을 때 이뤄져야 한다.

③ 기계 위임

미분된 행위 중에서 일부를 위임할 수 있다. 피위임 대상은 도구다. 도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인간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주거나 (보완)
– 인간의 능력을 양이나 질적으로 더 잘해내거나 (강화)
– 인간이 해낼 수 없는 행위를 가능케 하거나 (초월)

2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부족했던 물리적 노동력을 보완하며 일어났고,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처리 능력을 강화하며 일어났다. 현대인의 업무 대부분은 정보처리이며, 정보처리 기계인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업무를 재구성해야 한다.
컴퓨터가 연산할 수 있으려면 연역적 연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기 전에도 인류는 이미 정보처리 모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독립변인 – 모델 – 종속변인] 또는 [input – process – output] 의 모델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원인만으로 결과를 예상하거나, 결과만 관찰하면서도 원인을 파악해낼 수 있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감정의 영향을 제외시킬 수 있는 인간이라면 정보처리과정을 쉽게 컴퓨터로 연산위임을 시킬 수 있게 된다.

④ 재편성

행위의 일부가 도구에게 위임되는 순간, 사람의 역할도 바뀌게 된다. 도구의 역할과 사람의 역할을 재구성해야 한다. 도구가 할 일을 임시로 맡았던 사람의 역할은 해임되고, 사람에겐 도구를 활용하는 새로운 역할이 배정된다. 돈 세는 일은 계수기가 더 잘하고 녹취록을 문자언어로 바꿔내는 일은 클로바노트가 더 잘해낸다. 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100번을 노가다하며 터득한 사람의 숙달능력 중 일부는 폐기되어야 한다. 전체 역할 수행 과정을 도구와 사람을 함께 고려해 재편성해야 한다.
사람과 도구가 통합되어 시스템을 형성하기 때문에 사람과 도구를 융합시켜야 한다. 도구의 성능 자체를 높이는 일과, 사람의 사용성을 높이는 일도 진행해야 한다. 반복되는 부분 행위를 모듈화해야 한다. 모듈끼리 연동관계를 조정하면서 전체 구조를 리팩토링 해야 한다.

⑤ 최적화

재편성의 단계를 반복하는 최적화의 기간을 가져야 한다. 비정형의 작업 수행 과정을 정형화시키고 최대한 일렬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일렬려 배치해내지 못하면 경우의 수가 늘어나 복잡도가 늘어난다. 시스템 설계의 요령과 모델링 방법은 더 많겠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함의 추구다. 재편성 과정에서 단순함을 추구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기존의 작업보다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⑥ 회고

Version 1이 만들어졌다. 이 방식이 더 나은 방식인지 돌아보자. 더 나은 방식이 아니라면 ②번이든 ③번이든 ④번이든 다시 돌아가서 해야 한다. 더 나은 방식이라면 다시 ①번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방식으로 100번 노가다 하며 다음 개선을 준비하자.

 

이 과정이 한 사이클이다. 사이클을 반복한다.

 

— 덧붙임 —

언제적 테일러리즘이냐. 4차산업에 적합한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 덧덧붙임 240623 —

테일러리즘은 탈영토화-재영토화다. 4차건 5차건 6차건 이것말고 다른 방법은 딱히 없는 것 같다.

Unlearn에 걸린 2년

내려 놓았다.

도통 무엇을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런 느낌은 수 개월이 아니라 년 단위를 넘어섰다. 출근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도 개선의 진척이 없으니 나는 방향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출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자전거를 탔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제일 잘 타는 놈이 되었다. 출근자덕보다 무직자덕이 아무렴 잘 타야 했다. 일의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 운동으로 만들어낸 성과를 확인하며 자존감을 지켜냈다.

다른 회사에 출근도 해봤다. 지식도 능력도 요령도 많은 나같은 일꾼이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국가적으로 산업경쟁력에 손실이 발생하는 낭비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내 모습도 관찰해볼 겸 회사도 다녀봤다.

기세를 몰아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기로 했다. 모든 역할을 직원에게 위임했다. 출근하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모든 책임을 내려 놓는다고 명문화해 사인까지 하고나니, 완전한 자유인이다. 평소라면 전혀 만날 일이 없던 호화궁상을 만나보고 철학공부를 유튜브로 2달 내내 하기도 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돌았다. 갇혀버린 상태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알차게 보냈다. 장장 2년의 기간이었다.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만큼이나 모든 것을 내려 놓아본 시간 또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기에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람도 떠났다.

부친상을 당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여읜 후의 감상을 공유하고자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덧붙였다. 사람들은 으레하듯이 나에게 상실을 위로했지만 나는 요상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공유하고자 했던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되었다. 부친상은 조부모상과 분명 달랐다. 나는 비로소 내 삶을 긍정하게 되었다. 좋으나 싫으나 내 존재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되었다. 트라우도 흑역사도 짧은 인생의 덧없음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더이상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가장 오래 일한 직원도 떠났다. 국가는 무엇이고 기업은 무엇이며 개인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때로는 아주 중요하기도, 때로는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한다. 혼자서 달성해낼 수 없는 목적이기에 여럿이 모이고 조직을 형성한다. 또 다른 구성원의 조합으로 또 다른 조직이 되어 또 다른 도전에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한다.

 

유사 서비스도 생겼다.

매해 서너개씩 나왔지만 궤도에 오른 것은 그동안 하나도 없었다. 다들 모냥새만 흉내내다 요구되는 비용과 자원과 시간과 복잡성에 손을 들고 떠났다. 미련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서 나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었다.

실행의 싸움도 기술의 싸움도 디자인의 싸움도 마케팅의 싸움도 효율의 싸움도 자본의 싸움도 아니다. 이것은 개념파악의 싸움이다. 누가 다음 개념을 찾아낼 수 있을 때까지 미련하게 들러 붙어 있을지의 싸움이다.

적어도 나는 창조자가 아니다. 정리하는 사람에 가깝다. 지저분한 귀납적 현상들을 최대한 많이 받아들이고 정제하고 재분류하고 정의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해내는 정보처리기계이다. 이전보다 나은 다음을 한 단계씩 만들어내며 도달한 게 지금의 문명이다. 오늘도 분야마다 한 단계씩 다음 모습을 찾으려고 아둥바둥거리는 게 현대 문명인의 책무다.

나 또한 앞선 서비스의 시도를 오답노트삼아 만들어낸 유사서비스였다. 그리고 더이상 참고할 성공사례도 실패사례도 없을 때 나는 정체기를 맞았다. 앞서 존재한 서비스를 내가 이겨낸 것이 아니다. 앞선 서비스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존재했기에 유사 서비스들이 또 나올 수 있었다. 나 또한 유사 서비스 덕분에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다.

이렇듯 동시대를 살아가며 교류하는 모두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감사한다.

일복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일이 많았던 때도 아니고, 문제가 어려웠던 때도 아니다. 일이 없었을 때다.

일이 많다는 것은 세상을 인지할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역량을 강화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사회에 쓸모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축복이다.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어려운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다. 내 능력의 한계를 돌파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도전과제이며 이 또한 축복이다.

나는 오히려 일이 없었을 때 방향을 잃었다. 내 존재가 무의미해졌고, 짧은 생을 살면서 세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기력을 느꼈다. 우리는 일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주단위 결산 명언 모음

작년 여름부터 일의 호흡을 바꾸었다. 주단위로 끊어 가기로 했다. 주마다 결산을 하며 한 줄 평이 남겨진다. 문장들이 쌓이니 내가 어떤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잘 보여지는 것 같다. 묶어본다.

 

 

Reset everyweek.

정리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습니다.

“솔직, 간결, 즉시”

설레는 일을 합시다.

비효율은 적이다. 적을 섬멸하자.

Concise and Precise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제대로 일하게 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수요가 시스템에 선행한다.

Active한 일을 Passive로 바꾸는 일

어떤 바람이 불더라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세상은 우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양의 영역은 AI인공지능기계에 맡기고 우리 인간은 질에 집중하자.

숨쉬듯 운영정비

문제를 Universal하고 Permenant하게 풀자.

개인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일은 가장 확실하게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see wider, aim higher.

[목표설정 > 시도 > 회고]의 무한반복

구조는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조가 없는 환경에 내던져 지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찾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끔 나는 구조가 없는 환경 속으로 제발로 걸어 들어간다.

Due가 있고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일은 마무리된다.

당장의 문제에 집중. 오늘의 최선.

KISS & MISS(Keep It Super Simple, Make It Super Simple.) Simple is best.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고 기술의 제약은 누구에게나 있다. 부족한 자원임에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제약이 있는 기술임에도 궁극의 구현을 해내는 것이 가치 창출의 본질이다.

일이라는 것은 내 능력과 기술을 시대와 환경과 산업에 최적화시키는 일이다. 사업의 기회도 직무의 역할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잠시 주어질 뿐이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이상 될 수 없다. 같은 일을 120% 집중할 때 도달하는 제로의 영역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일을 절반 이상 버리는 것이 시작이다.

기술이든 콘텐츠든 디자인이든 모두 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자원은 언제나 부족하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은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든다. 자원이 풍족하면 오히려 우리답지 못하게 된다.

being Original.

기술의 보급, 낮아지는 요구 자원, 높아지는 구현 가능성, 짧아지는 사업 경쟁력 지속시간.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하면서 같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다.

10번을 개선하는 게 아니다. 10번을 버리는 일이다.

노동은 사라지고 올바른 판단만 남는다. 올바른 판단은 다시 노동을 없앤다.

Do the right thing, right way, right now.

It takes time. It takes steps.

한 가지 발차기의 만 번 연습.

테크가 별건가. 일 잘하는 게 테크다. 높은 생산성이 테크다. 적은 자원으로 높은 성과를 내는 게 테크다.

나의 강점은 교집합이 아닌 차집합에 있다.

Get Things Done.

나 자신은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설령 오늘 정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내일의 나는 정답을 찾을 것이라는 긍정을 가지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뛰어나듯이, 오늘의 나보다 뛰어난 내일의 내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자기확신을 가지자.

끊임없는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는 희망

인간이라는 종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다. 내 생의 시작과 끝은 이미 정해졌다. 거기엔 내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자의적인지 타의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결정할 수 있고 집중해야 하는 문제는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한 것이다.

내가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작게나마 내 방식으로 돌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일궈 냄으로 내 존재 가치를 만들어낸다. 생물학적 욕구인 행복, 쾌락, 고통회피, 안위를 충족되는 환경이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태생적 동물 욕구만을 위해 사는 것은 저급한 일이다. 나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유를 하고 작은 세상을 설계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인식은 관점의 문제다. 만든다는 것은 곧 바꾼다는 의미다. 무엇을 바꿀지 바라보기 가장 좋은 것은 비판적인 시각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향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 어렵다. 대체로 직전 세대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한 단계만 나아갈 뿐이다. 한 번에 열 단계를 건너 뛰어 이루려고 시도해 성취한들 그것 또한 바로 다음 단계다.

이전 시대엔 기근, 가난, 전쟁, 불균형, 비효율, 단절의 문제가 있었다. 인류는 그 문제를 풀었다. 이미 풀어진 문제에 붙들려 있을 필요는 없다. 인간 유전자 구조가 모두 파악되고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던 정신노동력은 인공신경망에 의해 추월 당한 지금 생체적인 한계의 극복은 무의미해졌다. 공급이 소비를 넘어서서 기본권이 보장된 시대에 부의 축적이나 사치를 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소비기계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세상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모든 문제가 사라지면 인간은 그저 사육당하는 개체가 되어버린다. 인간 스스로가 이룩한 문명에 의해 스스로 사육당하는 짐승의 상태로 회귀하게 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개척하는 역할과 구축하는 역할을 맡을 기회는 적어진다. 비극이다. 하지만 이 비극 또한 문제다.

다음 단계의 세상에 도달하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비극이 발생할 것이란 사실은 얼마나 다행이고 희망적인 일인가.

보상을 바라는 인간 (게임을 만드는 사람과 게임참여자의 관계에 대하여)

보상을 바라는 인간은 결국 돈을 벌지 못한다. 보상을 좇고자 하는 생각은 결국 이익을 얻을 수 없는 판으로 자신을 내몬다. 당장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이미 만들어진 게임에 참가하고, 이길 수 없는 게임의 공략법만 파헤치게 만든다.

이들은 게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게임이 내 것으로 만들어진다면 보상이야 얼마든지 조정해낼 수 있다. 그래서 이걸 깨우친 사람들이 “돈을 좇지 마라. 돈이 따라오게 만들어라”라는 얘기를 했다. 절반의 개소리라 생각하고 절반은 믿는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이익을 추구하지 마라. 겸손하고 바른 태도로 살아 덕을 쌓으면 업보가 돌아올 것이다” 정도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모두가 게임의 판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모두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면 소는 누가 키우나. 게임에 참여할 사람이 있어야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도 지배자는 노예를 인정하고 존중했다. 노예가 없이는 지배자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임 참여자를 존중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진 게임은 곧 사이비 다단계 폰지사기가 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서 당장의 이익만 생각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의 크기에 유혹되어 장기적으로 큰 불안과 위험에 빠지게 된다. 목표는 주어지고 계획도 제공받는다. 그 계획이란 절대로 실현될 수 없거나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계획이다.

게임 참여자들은 계획의 실현가능성을 판단하지 못한다. 기대값은 기대성과와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곱해 계산된다. 로또는 기대값이 50%이며 보험도 그 언저리다. 이런 기본적인 계산을 하지 못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이유는 게임의 판을 만드는 측에서 일부러 잡음을 넣기 때문이다. 종교에서의 간증과 서비스의 성공사례는 실현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믿게 만드는 모함 장치다.

우리는 불만종자다.

우리는 만족을 모른다. 강하게 열망하던 대상도 소유하게 되면 흥미를 잃는다. 강하게 추구하던 목표도 달성하게 되면 만족감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우리는 이런 성향 때문에 만성적 불만족에 시달린다. 이미 가진 것과 이룬 것을 보는 것으로는 만족감이 충족되지 못한다. 열망은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생긴다.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성향 덕분에 인간이라는 종은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다. 개인은 불안과 권태에 고통받지만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쉴새없이 움직일 수 있다.

인간은 세 가지 의지를 가지고 있다. 생존의지, 증식의지, 개선의지다. 생의지가 있어야 일단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의지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증식의지가 있어야 대를 잇고 다음 세대가 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거의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 증식의지가 있기에 개척을 했고, 지구를 다 개척하고 나니 인류는 화성으로 가겠다고, 미시의 세계로 가겠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개선의지가 있기에 그 모든 일을 해낸다. 개선의지는 인간만 가진 고유한 의지다. 개선의지가 있기 대문에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고,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킨다. 개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그저 짦은 시간 살아 숨쉬다 생을 마감하는 생물학적인 존재들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만들기 위해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마음을

만드는 것이 삶이다. 만드는 과정이 삶이다. 만든 결과물은 아니다. 결과물은 영원하지 않다. 결과물이 세상에 선보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무가치 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들던 과정은 값지다.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도가 가장 고상하고 고결한 가치를 가지는 일이다.

내 삶을 값지게 보내려고 한다면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노력하는 시간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무엇을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목적과 수단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하면 결과물은 만들어진다.

생각은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 아니, 지배를 받는다.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을 지속해야 하고, 올바른 생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달에 꽤 대단한 것을 만든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멘탈이 반질반질한 사람” 마음의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 위한 생각, 올바른 생각으로 하루를 가득가득 채워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게 반질반질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 사람을 완전히 알지 못하니 그 사람의 마음이 날 때부터 티가 없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회복탄력성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서 인지는 모른다. 대체로 마음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할 수 있고, 그래야 만들 수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안, 비관, 불신, 비난, 부정, 염세, 허무의 마음이 없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긍정, 희망, 변화, 흥미, 발전, 개선, 칭찬, 격려, 감사, 만족, 자존의 마음이 넘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목적지가 없다면 크루저를 타도 표류다. 목적지가 있으면 뗏목을 타도 항해다.

모로 가도 한양만 가면 된다. 한양에만 도착한다면 불완전한 탈 것이어도 괜찮다. 애초에 완전하거나 불완전한 것은 없다. 인생은 항해이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일의 연속이다. 완전해 보이는 탈것이라도 시대가 변하면 불완전한 탈것이 된다. 탈것이 아닌 목적지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믿음

꾸준히 하는 것만큼 강한 것도 없다. 빠르게 하거나 똑똑하게 하는 것으로 단기간에 성과가 나올 순 있다. 하지만 꾸준함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 있다. 그 영역에 도달하기위해서는 믿음이 굳건해야 한다.

믿음은 의심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희망을 연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중간에 확인해야 한다. 중간 확인 없이 지켜지는 믿음은 믿음보다는 맹신이다. 꾸준함이 아닌 미련함이다.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이다. 의심이 많다는 것은 불신이나 회의적인 태도와는 다른 현명함이다.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는 눈이다. 현명하고 의심많은 사람의 믿음은 좀체 쉽게 생기지도 않지만 한 번 생기면 굳고 단단해서 여간 흔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믿는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내가 이해한 세상이 실제 세상의 모습에 가깝고, 내가 찾아낸 공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나는 선하고 이로운 사람이고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