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운영본부장 채용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

요즘은 스타트업을 그렇게 많이 만나진 않지만 2012~13년도엔 1년에 천개를 만났다. 실제로 만난 곳도 있고, 건너서 소식을 들은 곳도 있고, 심사의 대상이 곳도 있고 다양하다. 갖은 채널을 통해 다양한 (급성장을 목표로 하는 신생) 회사들을 만난 경험은 값지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당시엔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들도 이젠 이해될 정도로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

오늘 되돌아보며 짚는 요점은 성장통이다. 여러 가지 성장통이 있지만 조직의 확장 단계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있다. 우선이전의 방식이 이상 작동하지 않고, 어떤 방식이 제대로 방식인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혼돈을 겪는다. 여러 실수를범하고 무너지거나, 실수로부터 배워서 방법을 찾거나, 멘토의 가르침을 따라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곳도 있다.

급성장 목표로 하는신생회사라는 점에서 문제의 원인은 이미 정의되어 있다. 신생이라고 하는 것은 경험이 없다는것이고, 경험이 없으므로 멘토의 가르침을 따르거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 삼는 등의 경험 보완이 있어야 한다. 급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급성장을 목표로한다고 서두르다가 그르치기보다는 조금 천천히 가는 것만으로도 문제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나처럼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템포의 결정은 자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편하게 수도 있는 것은 아닌 같다.

아무쪼록 일생일대에 처음 맞이해보는 성장기에서 슬기롭게 다음 단계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말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망하는지는 알고 있는 같다. 스타트업 1,000개를 만나면서패턴파악이 빠른 편이라서 이정도의 귀납적 추론과 깔끔하게 떨어지는 mece로는 이상 예외없이 다음 가지 패턴안에 모두 포함될 것이라 생각한다.

가지 지표를 측정해야 한다.

리더가 필요를 인지하는가

조직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가

문제를 해결할 있는가

1-1 △△O

리더가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문제를 쉽게 해결해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를 하고 있을 때이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와서 문제를 완벽하게 풀어내더라도 리더는 얼마나 어려운 문제가 풀린 것인지 알지 못한다. 결국 리더의 그릇이 작은 것이다. 운이 좋아 그렇게 쉽게 문제를 푼다 한들 그것을 내재화하지 못하게 되고,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마다 의존을 하게 된다. 자생력을 잃은 조직이 된다. 성장을 논하기 전에 생존도 못하는 조직이다. 존속이라도 가능한 조직은 이런 징조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조직은 임종 직전의 조직이므로 만나게 된다면가급적 빨리 연락을 끊어야 한다. 이런 의존형 거머리 같은 존재를 도와주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해악을 키우는 것이 된다. 의존형 거머리를 도와주면 리더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문제를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중엔 다른 사람에게도 의존을 것이다. 실제로는 자립성을 갖춰야 하는 것인데 그와 반대로 의존성만 키우게 되는 것이다. 도와주는 도와주는 아니다. 도박중독자에게 대리변제를 해주는 것만큼 나쁜 일이다. 문제를 풀어줘도 보상을 받지 못하므로 개입되어선 되는 케이스다.

1-2 X△O

리더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없다고 판단했을 수도있고, 실제로는 중요한 일인데 리더가 필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고 리더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없다. 따라서 항목3 무의미해진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를 풀겠다고 바깥 양반이 혼자 난리치는 형국. 이건 찾아간 잘못이며 문전박대 당해야 정상이다. 상황은 문제 자체가 없는 상황이므로 제외하면, 실제로는 중요하지만 리더가 필요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우 문제를 풀어주게 되더라도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 그래서 협력에서 팃포탯이 중요하다. 내가 한발 나섰다면 상대방도 한발 나서야 한다. 필요를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가 나섰는데 상대방이 한발 나서지 않고 내가 두발 나서면 상대방은 어떻게 하겠는가? 두발 나설까? 아니다, 이젠 발도 나서지 않는다. 두발을 나서고 나면 이제 기대하는 것은 세발을 나서기를 기대한다. 한발도 내지 않으면서. 양보해서 세발을 냈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될까? 그렇다 이젠 네발을 내어보라고 한다. 순진한 사람은 다섯발 여섯발까지 끄집어내다가 가랑이가 찢어져서 헤어진다. 리더는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지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소용없다. 둘은 다시 만날 없는 사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2-1 OOX

스타트업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케이스다. 조직에서 필요로 하고, 리더도 필요를 인지하고 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양반이 일을 못할 발생하는 상황이다. 깜냥을 알지 못하고 욕심만 앞서서 책임감 없는 지킬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경솔한 인간들이 문제를 발생시킨다. 실제로는 문제 해결능력이 없으면서 감투가 탐나서 스스로를 과대포장하는경우다. 실제로는 생각은 짧은데 의욕이 앞서서 실제로 자신이 그정도의 해결능력이 있다고 자신마저 속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실제로 문제해결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어서 문제가 발생할 밖에 없다. 바깥양반이 들어와서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기존 구성원들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진다. 외부 위협요인에 대해 면역반응을 하는 것이다. 면역반응이 없을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우니 협력을 요청하거나 시간을 들이거나해야 하는데, 과거의 자신이 저질러놓은 약속으로 인해서 번복을 하지 못한다. 경솔한 인간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것을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하는데 기존에 일하고 있던 구성원 자신을 반기지 않는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 보통이다. 새로 들이닥친 양반을 반기지 않은 사람은 기존 구성원 중에서 그나마 제일 일을 잘하고 상황파악을 잘하며 문제해결능력도 좋은 사람이다. 에이스라는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에이스를 빼내려고 한다. 굴러온 바깥양반은 리더와 친분이있거나 또는 리더의 신임을 얻은 상황이기 때문에 둘이 양주 나오는 곳을 가서 에이스 뒷담화를 깐다. 리더가 사리분별을못하는 사람이라면 수년간 자신을 위해 묵묵히 근면성실하게 일해준 에이스의 성과에 대해서는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일한지 달도 되지 않았으며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믿어서 에이스를 잘라버리는 실수를 한다. 필요없는 팔인 알았는데 자르고 나니 오른팔 왼팔이 없어졌다는 뒤늦게 안다. 찬사람은 몰라도 빈사람은 안다는 얘기가 있다. 그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돌이킬 없다. 잘려나간 팔다리는 고마움을 모르는 리더의 전화를 받지 않을 것이다.

2-2 OOO

조직에서 필요로 하고, 리더도 필요를 인지하고 있어서 갑자기 들이닥친 양반이 일을 잘해도 문제는 생긴다. 핵심역량이코파운더에게 있거나 아니면 자신들만의 일하는 방식을 찾아내서 새로 들어온 구성원이 신입이든 경력이든 임원의 합류든 누구든간에 일하는 방식을 기존 구성원의 방식에 맞추라고 한다면 문제가 없다. 그렇다. 이것은 문화적인 얘기다. 문화적인 근간이 없이 외부인적자원이 들어와서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방식이 옳고 좋은 방식이지만 적용이 서툰 사례다. 외부의 방식을 내부에 도입할 좋아지는 뭐가 문제냐 싶지만, 개선을 위해선 파괴가 필요한 법이고, 파괴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기존의 상황이 문제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조직 내부에서 함께 진단한 다음 처방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헌데 진단 자체가 기존 구성원들에게는고통스러울 밖에 없다. 자신들이 했던 일이년동안의 노력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 자신의 일이년 동안의 노력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몇일 몇주만에 바로 바로 개선되어 적용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질 밖에없다. 개인의 감정적인 자존감의 하락은 조직적인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팀워크가 없어지는 것이다. 바깥양반이 아무리 옳고 똑똑해도 구성원 없이 모든 것을 수행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일이년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순간에도 그저 새로 들어온 슈퍼스타를 선망하며 충성을 다해 따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일을 그렇게 잘하지 않기 때문에, 자존감이 하락해버려 전투력이 없어져버린 사람을 데리고 일하는 것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자괴감에 다른 분야로 떠나버렸을 수도 있어서, 개인적인 성과를 내는 1인분에 그치고 말아버리는 결과에 그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직에서 정말 필요로한가. 리더가 필요를 인지하는가 바깥양반이 문제를 해결할 있는가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를 충족시킨다 하더라도 절차와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진짜 그릇이 사람이라면 구성원을 통해서 일이 진행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마케팅이 아니다.

그것은 영업·세일즈다.

드러커 할부지는 “마케팅은 영업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마케팅의 목적은 고객창출이다. 고객창출엔 책임만큼의 권한도 함께 주어진다.
영업·세일즈의 목적은 판매촉진이다. 판매촉진엔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다.

영업·세일즈는 공급자주의에서 필요하던 역할이다. 만들어둔 상품 및 서비스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활동. 판매만 되면 그만이라는 태도.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나 고객이 정말 필요한지 따지지도 않는다. 권한없이 책임만 강요받은 척박한 상황을 극복한 사람들이 써내려간 영업 분야의 책 대부분은 자화자찬 일기장이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판 사기꾼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마케팅은 소비자중심주의다. 만든 것을 팔자가 아니라, 애초에 팔릴 것을 만들자는 태도다. 그러려면 제품과 서비스의 기획에 관여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에스키모인에게 최적화된 식품저장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상식적인 활동이 마케팅이다.

대체로 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는 사이가 좋지 않다. 마케팅 부서는 영업부서를 보고 “우리는 스마트한 사무직인데 너네는 발로 뛰어라”고 폄하하고, 영업 부서는 “실적은 우리가 다 내는데 쟤네들은 그 돈으로 뻘짓한다”고 응수한다. 사측은 말리지 않는다. 싸움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달라서 싸우는 게 아니다. 같아서 싸운다. 둘 다 영업부서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방법만 다를 뿐이다. 오프라인 영업부, 매체 영업부, 디지털 영업부가 싸울수록 판매량은 늘어난다. 이곳엔 마케팅은 없고 영업만 있다.

시간은 흘러 기술이 진보했다. 디지털 세계로 사람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졌고 언제나 그랬듯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에 시장이 들어섰다. 여기도 마케팅은 없고 영업만 있다. 콘텐츠 마케팅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영업이다. 영업사원의 접객, 설명, 설득, 회유의 과정이 디지털-전단으로 만들어져서 복제되는 것이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세일즈다. 기존의 영업사원이 하던 고객DB수집(타겟설정), 견적·제안(광고소재제작), LeadGen(전환), Closing(결제)을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수행한다.

두 종류의 활동은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디지털 마케팅이라고 모두 영업·세일즈인 것은 아니다. 고객의 가치 창출은 고객의 수요, 필요, 욕구에서 나온다. 고객의 수요, 필요, 욕구를 파악하는 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다면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드물지만.

영업·세일즈부서엔 책임만 주어지고 권한은 없다. 대체로 사측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영업·세일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자 사측에선 마케팅이라는 표현을 훔쳐 쓰기 시작했다. 이로써 현대인의 95%가 마케팅이 무엇인지 오해하게 되었다.

마케팅을 마케팅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지만, 마케팅이 아닌 다른 어휘를 쓸 수도 없다. 마케팅이 Martet + ing인데 어떻게 다른 걸 쓰나.

이렇게 우리는 마케팅이라는 어휘를 잃고 있다.

 

관련글 : 더듬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바이럴 영상의 죽음)

꽃이 되어 나타난 사업의 성과

이것은 꽃이 아니다
사업의 성과다

반기 거래액이 최고점을 갱신
감흥이 없다
숫자로 표현되는 사업의 성과
감흥이 없다

재미없는 기울기의 성장세로
예측 대로의 뻔한 미래가 찾아왔다고
모니터 너머의 직원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성과를 알렸다

이건 분명 축하할 일이고
뻔한 일도 아니라며
사업의 성과를 꽃으로 만들어왔다

무채색의 내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꽃이 되어 나타난 녀석을 보니
실감이 난다
꽃과 함께 사진을 찍어 놓으니
감흥이 돈다

실제의 존재로 나타난 사업의 성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차트의 뾰족한 꼭짓점은 참 못생겼던데
네모 안의 숫자는 참 못생겼던데
너 사실 이렇게 생겨먹었구나
너 예쁜 아이였구나

숫자는 날 스크루지로 만드는데
꽃은 날 시인으로 만드는구나

 

#일은지가다해놓고꽃은왜내가받아

#두명짜리회사

#작지만강한회사

#딴짓하는대표빼면사실상1인기업

#줄게없는나는답시라도쓴다

 

기업활동이라는 게 별것 없다.

기업활동이라는 게 별것 없다. 문제를 찾아 푸는 일이다.

경쟁력이라는 게 별것 없다. 남들보다 문제를 잘 푸는 것이다.

조직이라는 게 별것 없다. 더 큰 문제를 풀려고 모인 여럿이다.

운영이라는 게 별것 없다. 이미 아는 문제를 빨리 많이 푸는 것이다.

전략이라는 게 별것 없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려고 머리 쓰는 것이다.

고객이라는 게 별것 없다.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로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다. (돈 주는 사람 아님.)

마케팅이라는 게 별것 없다. 문제 잘 푼다는 걸 고객에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비즈니스모델이라는 게 별것 없다. 문제를 풀어주니 고객이 너무너무 고맙다며 돈을 주고싶어 안달 났기 때문에 냉큼 받아내는 일이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던 나를 위해 정리)

 

— 덧붙임 —

문제해결 프레임워크를 이해하는 데에 2년 걸렸다. 익숙하게 활용하는 데에 2년 더 걸렸다.
가치의 창출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 5년 걸렸다. 가치를 창출하는 데에 2년 더 걸렸다.
고객 중심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7년 걸렸다.

위 사람을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임명합니다.

“위 사람을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임명합니다”

세상에 없던 직업을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광대한 산업 내에서 우리를 필요로하는 역할의 빈틈을 찾아냈다. 그 일을 43개월 동안 꾸준히 해오니, 어떤 일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이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산업에서 지켜져야 할 표준이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믿을만한 파트너스 모여있어 제작업무 신임하니 고객응대 종일할수 있었다. 농담삼아 콜센터 돌린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는 연구소를 돌렸다. 기술은 없고 노가다만 할 줄 알아서 수천건의 거래를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사고 터지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다. 수천만원의 비용과 두어달의 시간이 허비되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어 오지랖이 발동했다. 온갖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고객의 양은 세상 어떤 피디가 평생 겪을 수 없는 양이다. 경험이 경험으로만 그치지 않고 절차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광고계엔 이런 말이 있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우리 회사엔 이런 말이 있다. “좋은 광고주는 내가 만든다” 우리가 찾아낸 표준 거래 절차로 산업의 비효율과 사고를 줄이고 있다. 표면적으론 그렇다. 실제론 의지를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광고주는 공통적으로 프로젝트 완수를 향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의지는 고유하거나 독립적이지 않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고,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의지도 만들어질 수 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프로젝트에 강한 의지를 심어 Deal Closing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이 일이다.

몇 사람들은 이 일을 하러 왔다가도 금새 떠났다. 진짜 콜센터로 생각하는 사람은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가장 처음 팀을 꾸렸던 권프로와 이프로만 남았다. 다시 둘이 되었는데 회사는 더 잘 돌아간다. 결국 이 일에 진심인 사람만 남았다. 권프로는 나를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닐 것이다. 산업 내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두 명 짜리 회사면 뭐 어떤가. 물리적인 일터는 4평짜리 사무실이지만 실질적인 일터는 3000억의 산업이다.

매니저로 시작한 직함을 작년엔 코디네이터로 바꿨다. 이젠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바꾼다. 세어보니 권프로가 230건을 했고 이프로는 130건을 했다. 내가 만든 직업이라 앞에 수석을 붙이고 싶었지만, 양으로 밀리니 명분이 적다. 그냥 둘 다 컨설턴트 하기로 했다. 나 스스로 임명할 순 없어서 친정 식구에게 임명식을 도와달라 했다.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졸업식 이후로 꽃 선물을 처음 받아봤는데 기분이 꽤 괜찮았다.

자전거 학원 수강기 (자전거박사박박사님 박프로 수강후기)

올 봄, 자전거 학원을 다녔다. 4주 짜리. 수강일기를 썼었다. 한데 모아 기록해둔다.

 

평로라에서 외전근 페달링 리듬 찾기 (학원 첫날)

제가 알던 페달링을 다 써봐도 그 리듬감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제까지 전 다른 걸 외전근 페달링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나봐요? 실망스럽진 않아요. 오히려 좋은 소식이죠. 그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걸 깨우치게 되면 제 실력은 또 얼마나 성장할까요? 벌써 설렙니다.

강습이 끝난 뒤 한시간 더 탔습니다. 말씀해주신 힌트들을 의식할수록 어색해졌습니다. 몸이 박자감을 찾기보단 독립적으로 동작하는 느낌. 머리로 안 찾아지니 몸으로 찾아보려 했습니다. 눈을 감고도 하늘을 보고도 땅을 보고도 해보았습니다. 탈진한 상태라면 무의식적으로 찾아내지 않을까 싶어 서너번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이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비슷한 리듬을 찾은 것 같습니다.

힘의 타이밍. 제 몸의 느낌대로라면 무릎이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왔을 때부터 짧게 스트로크를 쳐야 했습니다. 12-5는 정말 찰나의 순간입니다. ‘12시부터 5시까지만 힘을 줘’라는 코딩이 작동할만큼의 제 하드웨어는 좋지 않습니다. 명령어를 바꿔보았습니다. ‘12시에서 짧게 툭툭’ 더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당기는 근육의 습관도 잠시나마 잊혀집니다.

힘의 시작점. 무릎의 위치. 제 습관대로의 페달링보다 무릎은 안으로 2~3cm 가량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외전근은 다리를 바깥으로 회전시킬 때 쓰이는 근육 너댓개를 묶어 부르는 것인데, 이름 그대로 바깥 회전이 일어나려면 시작점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의 방향. 외전근은 무작정 바깥으로만 빼는 줄 알았는데 안으로 넣었다가 밖으로 밀어내듯 밟았습니다. 수직보다 5도 정도의 작은 차이였지만 몸 바깥쪽 근육이 많이 개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무릎의 시작점과 벡터의 방향만 정해두니 새끼발가락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새끼발가락에 힘준다는 코딩도 안하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Q. 이게 제대로 찾은 것인지 그 리듬감만 비슷하게 흉내내기 위한 요령을 부린건진 모르겠습니다.

Q. 발목을 펴고 11-3시까지 앞으로 던지듯이 내미는 페달링은 무엇인가요? (둔근과 대퇴직근만 사용)

Q. 860칼로리밖에 안태웠는데 왜때문에 필드라이딩에서 1200태운만큼 힘들죠?

Q. 두시간 지났는데도 심장이 쿵쾅대는데 저 죽는건 아니죠?

 

클릿 압수 (학원 둘째 날)

오늘도 종일 외전근 시팅 리듬만 찾으려다 아무것도 못했다. 이걸 못하면 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단다. 별 지랄을 다 했다. 당기는 근육의 관여를 줄여보자고 클릿도 압수당했다.

선생님을 퇴근시키고 혼자 돌리자니 오늘은 다른 회원이 없다.
나 하나 때문에 사장님이 퇴근 못하시는 것 같아 챙겨 나왔다.

나왔다.
나오니 나왔다.
필드에 나오니 리듬이 나왔다.

안장 코가 사타구니를 치고 사타구니는 다시 안장을 튕겨내는 이 리듬.

이 리듬. 나 안다. 아는 수준도 아니고 잘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주 우수한 동작으로 우아하게 리듬에 변주까지 먹일 수 있다.

나 평생 이 리듬으로 타왔다. 세발자전거도 이렇게 탔던 것처럼 페달에 발만 올려도 이 리듬은 나온다.

평로라에서만 안 나온다.

 

당겨 올리는 페달링 연습 (학원 셋째 날)

■ 선생님 말씀

오늘은 당겨 올리는 것만 연습할 거에요. 직근이에요. 대퇴직근. 장요근과 대퇴직근으로 끄집어 올리세요.
프로 중에서도 직근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기량이 크게 차이납니다. 이게 필살기에요.
끝까지 끌어올려서 앞으로 밀어내는 것까지 얘 역할이에요. 뒤에서 앞으로 끌어 당기듯이 무릎으로 니킥 차듯이 당겨 올리세요.

■ 훈련 후 소감

당기는 근육 아예 쓰지 말란 사람도 있고 조금씩만 쓰란 사람도 있었는데 아니네? 오늘 두시간 동안 당기기만 했다.
고관절 주변 근육을 위주로 쓰니 무릎 주변 근육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무릎에 대미지도 없다.
선생님은 장요근과 복근이 당기면서 온몸이 웅크려지듯이 힘들거라 했는데 작년에 뺑뺑이 돌리면서 이 근육 자주 썻는지 몸에 전혀 무리 없고 너무 상쾌하다.
당기는 근육만으로는 평로라 시속 80 넘기기 힘들다. 케이던스도 높이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페달링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얘는 얘만의 타이밍이 따로 있는 것 같다.

■ 짬내서 던진 막간 질문에 대한 답변

장요근은 자주 쓰면 안 되는 줄 알고 가끔씩만 20번 스트로크 치고 말았다고 했더니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계속 쓰라 하셨다.
모든 근육은 수축하면서 힘을 낸다. 그래서 관절을 뻗는 것보다 관절을 굽히는 힘이 더 세다. 온 몸을 굽히면서 니킥으로 당기는 페달링은 가장 큰 파워를 단기간에 뽑아낼 수 있다.
최대심박측정방식은 계단을 뛰어오르는 때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킥 댄싱으로 심박을 240까지 올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만큼 온 몸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신호다.
3분 정도의 업힐 코스를 공략할 땐 밟는 페달링에서 당기는 페달링으로 점점 바꿔나가는 게 좋다. 큰 근육을 나중에 써서 마지막에 쥐어 짜는 것이 에너지를 모두 쏟아낼 수 있어 효율적이다.
평소에 훈련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당기는 페달링을 먼저 써서 밟는 페달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당기는 근육으로 젖산역치에 빠르게 다다른 후에 밟는 근육으로 지속지극을 주는 방식이다. 그렇다. 젖산역치 훈련이다.

■ 나의 상태 진단

당기는 페달링에선 파워밸런스 60:40 까지 커졌다. 오른다리에 비해 왼다리엔 자극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사용한 것이다. 오른다리는 왼다리가 굴리는 페달링에 얹혀가듯 살아온지라 상사점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왼쪽은 수직 직선운동이 이뤄지지만 오른다리는 11자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허벅지가 근육량이 적어 얇은데도 싯포스트에는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골반이 열리지 않은 것이라 말했다. 오른 골반만 열어야 했으나 그것은 무릎의 위치만 바꾼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었다.

■ 처방

선생님도 이정도의 언밸런스는 본 적이 없다며 비장한 표정으로 이걸 고치는 게 가장 시급한 숙제라고 말씀해주셨다.
정 안 된다면 오른발에 스페이서를 넣자고 하셨다. 그럼 힘점을 더 이르게 줄 수 있어 근육의 개입을 조금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 방법은 최후의 처방인데다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선택지라며 머리를 쥐어 뜯으셨다. (아… 선생님… 모발을 소중히…) 선생님의 모발건강을 위해 나는 이 숙제를 기필코 풀어야 한다.
외발페달링 훈련에 대해선 좋은 생각이 아니라 하셨다. 자세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자전거는 몸이 대칭된 상태로 좌우가 번갈아가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항상 말해왔던 사람이다.
우선의 처방으로 오른 골반만 살짝 뒤로 빼라고 했다. 골반을 뒤로 뺄수록 큰 근육을 사용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골반을 살짝만 뒤튼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익숙한 자세를 지우는 의식을 지속하기도 어려웠다.
이윽고 골반을 틀어내는 요령을 찾았다. 왼손은 후드, 오른손은 바엔드를 잡았더니 어깨와 골반이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확실히 오른다리가 페달링에 개입을 많이 한다. 밸런스 수치도 53:47 까지 줄어든다. 당분간은 일반 주행 자세에서도 이렇게 뒤틀어 잡아 교정해볼 계획이다.

■ 선생님의 화법에 대해

선생님의 수업을 세 번 들어보니 참 완곡한 표현이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저는 그렇게 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어요”는 경상도 선생님의 “시킨거나 똑바로 해라임마”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그래도 엄청 잘하고 있으신거에요.”는 경상도 말로 “이정도는 할 줄 알았다. 등신새끼야” 정도에 맞먹는 피드백이다. 서울살이 어언 10년. 나도 스윗한 서울남자의 표현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10점만점에 3점쯤 되는 것 같다. 박수를 열번 연속 치는 것은 5점 쯤 된다. 나는 평생 누가 나에게 박수를 열번 연속 쳐준 적이 거의 없다. 이 선생님이 나에게 쳐준 박수, 그 빠르고 경쾌한 박수소리를 들었을 땐 내가 자전거 천재인줄로 착각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이은호를 자전거학원에 수강하게 만든다.
박수는 생각보다 자주 터져나왔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는 50대 아저씨가 한 손을 놓아 물통을 꺼내 마시고 다시 꽂아넣는 것을 성공했을 때에도 박수를 열번 쳐주셨다. 같이온 다른 아저씨가 양손을 놓고 셀카를 찍었을 땐 스무번 쳐주셨다.
아… 이분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주 훌륭하신 분이구나… 이분 자전거 안타고 장사 하셨으면 뭘 팔아도 꽤 많이 파셨을 것 같다.

 

 

채우려면 비우라 (학원 넷째 날)

난 몸이 나빠서 머리가 고생하는 타입. 그런데 머리가 좋지도 않음. 혼자 주법연구하고 유튜브보면서 배운 게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음. 소프트웨어가 엉망진창인 상태. 명령어들이 충돌을 일으키고 새로운 명령어는 실행되지도 않음.

나는 제대로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 찍어보면 전혀 다르게 타고 있음. 성립하지 않는 주법도 많고 비효율적인 주법을 몸에 익혀버린 탓에 결론적 연비가 나빠졌음.

다 버려야 함. 주법 많은 거 다 필요없음. 이소룡은 만가지 발차기를 연습한 놈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음. 그런데 한가지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무섭다고 했음.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 함. 주법을 다양하게 구사할수록 조빱이란 게 쉽게 들통날 뿐. 다 버려도 됨. 만가지 주법 다 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음.

망치를 들어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야 함. 고통과 위험을 스스로 받아들여 극복하는 자-초인-이 되기 위해.

——— 기타학원에서(어렸을 때 호호깔깔 유모어집에서 읽은 구절) ———
기타 강습료가 얼마인가요?
> 십만원입니다.
저… 다른 곳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강습료를 절반으로 깍아주실 수 있나요?
> 그렇다면 이십만원입니다.
깍아주진 못할 망정 왜 두배가 돼요?
> 다른 곳에서 배우셨다면 잘못된 습관이 들어있을거에요. 잘못된 습관을 지우는 건 백지 상태인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 두배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두배로 내셔야지요.
————————————————————————————————

스스로 백지의 상태가 되지 않으면 선생님은 올바른 가르침을 입력할 수 없음. 백지가 되지 않으면 수강료를 두배로 청구받게 될지도 모름. 이를 악물고 지워내야 함.

차사장님의 가르침, 친구의 훈수, 나름대로의 연구, 자덕유튜버의 자기주장, 다른 프로 선수의 설명, GCN콘텐츠, 이 모든 것을 버린다. 옳은거 틀린거 가리지 않고 모두 통째로 내다 버린다.

1. 모두 지운다.
2. 선생님이 “바로 그거에요” 라고 한 것만 남긴다.
3. 반복한다. 몸에 새긴다. 머리말고 몸에 새긴다. 머리로 이해하고 싶어지면 당장 생각을 멈춘다. 동작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다. 잘못된 습관을 덮어버릴 정도로 반복한다. 백지의 상태에서 학습하는 것보다 최소 다섯 배는 많이 반복해야 할 것.

…. 라는 각오로 학원에 갔는데
더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평로라 거꾸로 타보라고 시키심
거꾸로 타지니까
댄싱까지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며
댄싱을 또 시키심
댄싱이 되니까
제일 가벼운 기어로 케이던스 50놓고 손놓고 타보라는
말도 안되는 서커스를 숙제로 내주심 ㅡㅡ;;;

종일 서커스 연습을 하다가 어느덧 열시가 되었고
여느날처럼 가파른 지하주차장 언덕을 오르는데
아니 이거 뭐야
왜 자전거가 저절로 올라가지
이상하다 싶어서 또 평지를 달리는데
어라 이상하다
자전거가 가만히 서있네
어허 거참 이상하다
자전거가 저절로 서서 가네
난 얹혀만 있고 얘가 자율주행을 하네
밸런스 미쳐따리 오져따리

나의 개발실패 복기

5년 전, 요리사를 위한 구인구직 서비스를 기획했다. 요리를 위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럴싸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경쟁 서비스는 17년 전에 만들었으므로 내가 새로 만들면 당연히 더 나을 것이고 사람도 끌어모을 수 있을 거라 막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나는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게임을 접었다. 싸우기도 전에 졌다. 링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최근 구인구직 서비스를 하나 더 기획했다. 어느정도 윤곽이 보이자 서비스를 공개하기 부끄러웠다. 이 서비스 또한 링 위에 올리지 않았다. 5년 전 발생한 사건과 너무 흡사해서 스스로 놀랐다. 나는 이 분야에서 하나도 나아지지 못했구나. 생산의 결과는 공정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므로, 같은 공정을 거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또한 유추 가능하다. 이번 복기는 내가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공정에서의 잘못들을 되돌아보기 위한 복기이다.

 

복기를 하기에 앞서서, 복기에 대한 생각부터 정리한다. 복기는 보통 같은 종류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적용하면 좋은 패턴 파악 방법이다. 게임이나 운동에 적용하기 좋다. 형식이 제거된 게임의 규칙이란 대체로 단순해서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목적지와 그 경로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업은 상대적으로 복합적이다.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원인이 다양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따라서 복기를 하더라도 정확한 원인이나 개선방향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려고 하더라도 내가 개입되었던 사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또한 현재의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에 따라, 현재의 결정이 옳다고 판단내리기 위해 과거를 해석하는 관점에 투영되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하려는 태도는 불가지론에 어긋나며, 복기를 통해 큰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성급한 결론 도출로 이어지거나 사소한 사안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려는 중요도 파악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사업을 되돌아볼 때에는 복기를 하더라도 구체적인 결론을 찾아내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접근해야 한다. 결론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세상은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성급한 체계화와 규격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복기의 틀은 마련되어야 한다. 과정으로서의 복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법을 찾지 못했더라도, 나중에 내공이 더 쌓인 나를 위해서라도 틀에 맞춰 사태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문제정의/개선]의 2가지 구성이 일반적이겠다.

 

확장과 초심의 문제

한 번 형성된 서비스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변경되긴 어려웠다. 덕지덕지 붙이는 것도, 억지로 늘여 넓히는 것도 올바른 운영방식이 아니었다. 특정 고객의 수요를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공급자와 연결하는 서비스의 콘셉이 바뀔 수 없었다. 그래서 확장 계획을 성급하게 몇 가지 생각했다. 에딧폴리오(구인구직) 에딧팜(직접공급) 하지만 이 두 계획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결에 맞지 않았다. 한 그릇에 담기지 않았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비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지금껏 3년 8개월 동안 축적한 경험과 경쟁력이 신사업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접근이였다. 실행되더라도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 비드폴리오의 초심은 아래 세 글에 잘 쓰여져 있다. 초심을 지키면서, 산업 내에서의 역할을 지키면서, 중개자의 철칙을 지키면서도 서비스를 확장할 방법은 나온다. 까다로운 조건이 설정되어 오히려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비드폴리오 창업 동기 (파트너스 편지) http://vidfolio.kr/?p=6251

비맴심서(比買心書) – 비드폴리오 매니저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http://vidfolio.kr/?p=7483

영상제작 거래중개서비스를 창업한 8개월의 기록https://leeunow.mycafe24.com/?p=781

 

내가 만든 세상에 스스로 갇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진 것이 세상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만 생각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욱 깊게 들여다보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잘 만들었다고 만족스러울 때면 멋드러진 이름을 붙이고 흐뭇해했다. 그럴수록 애착이 생기고 이것은 어떤 의미인지 곱씹어보며 자화자찬을 내뱉으며 구성원의 공감을 억지로 이끌어냈다. 그럴수록 내가 만든 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 가진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잘못. 나의 solution은 고작 수단일 뿐인 기능이나 필요에 따라 형성된 절차들일 뿐이었다. 생각의 출발은 고객이어야 하고 생각의 끝도 고객으로 향해야 한다.

 

목표 동기화의 문제

추상적인 미션은 있으나 구체적인 목표가 가시화되지 않았다. 실행 계획들이 미션에 전혀 일치하지 않음에도 수행하는 이유는 alignment를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한참이나 진행된 후에야 많이 어긋나있음을 알게 되었다.

>> 목표를 가시화해야 한다. 가시화란 눈앞에 선히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구체적이어야 한다. 숫자로 표현되면 가장 구체적이다.

 

필요 역량의 파악 문제

모른다는 것은 두 가지다. 알지 못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뉜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번 실패를 통해 기획자, CPO, 디자이너, 코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당연하게도) 필요한 역량을 끌어오거나 직접 갖추어야 한다. 필수조건이다.

 

투자(도전)에 대한 태도 문제

7년 전, 사업을 시작할 때 보험이 될만한 장치나 완충지대가 없었다. 나는 쫄보 기질이 강했다. 때문에 리스크 최소화의 태도로 사업에 임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적은 보상을 확보하는 low risk low return을 불가피하게 택했다. 이런 태도가 장기화된 습관이 되었다.

>> 이런 궁상맞은 태세는 적은 비용으로 실패의 경험을 사는 데에는 적합하겠지만, 어느 정도 여건이 갖춰진 뒤에는 리스크를 감안하는 도전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 위험감수와 비용절감은 다른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누구보다 큰 위험을 감당하지만 여전히 문짝책상을 쓴다.

 

필요 역량의 공급 문제

‘자원을 적게’라는 것이 우선 조건으로 걸리다보니 선택지가 좁아졌다. 쉽고 빠르게 결과를 낼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방법을 우선 결정했다. 그리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시장이 받아들이기를 기도했다. 시장이 원한다고 믿으며 그 증거를 수집했다.

>> 정반대의 순서로 접근했다. [시장의 수요 > 수요의 서비스화 > 서비스의 수행]의 순서로 전개되어야 올바른 서비스의 기획이다.

 

공정의 문제

나는 꽤 훌륭한 기획자라고 자부하지만 웹 기획의 영역에선 얘기가 달랐다. 웹 기획자의 영역에서 보자면 3개월차보다도 못할 것이다. 웹 기획의 분야에서 올바른 공정은 따로 있으나 나는 알지 못했다. 백지의 PPT를 켜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만으로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총체적인 서비스는 여러 기능과 시스템이 통합되어 제공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프론트 이지만 각각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겉모습만 흉내내어 만들어낸 서비스는 경쟁력이 있을 리 없으며 ‘영원한 베타’ 정신과 정반대로 향하는 것이다.

>>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해야 한다. [현상 및 현황파악 > 착상의 파편 기록 & 정제 > 기획(실현계획수립) > 실행] 네 단계를 거치도록 기획의 절차를 마련했다. 오래 걸리더라도 이 과정을 거쳐야 올바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 첫 삽 뜨기 전에 설계도부터, 악셀 밟기 전에 네비부터, 칼 들기 전에 레시피부터

 

공정이 해답이라 생각하는 문제

생산성을 10배 높이는 과정에서 공정과 방법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루틴한 업무들은 공정을 개선하거나 루틴한 절차를 만들어내면서 운영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재미를 보다보니 만능해결책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갈수록 공정과 방법론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집착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공정과 방법론을 시도했으므로 약간의 성과는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0으로 수렴해가고 있었고 더 이상 시스템에 의존하는 태도로는 혁신은 커녕 개선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실전에 뛰어들기 무서워 대타를 내보내는 비겁한 태도다. 공정이나 절차를 통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분야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 땐 공정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을 파괴하고 기존의 방법을 버리면서 개선이 일어난다. 이 몹쓸 태도는 나의 의식의 전원을 꺼버린다. 동물적인 감각을 아예 잃어버렸다.

 

분류집착

분류를 잘한다고 사용성이 좋아지진 않는다. 분류를 하는 입장의 사람은 명확한 개념의 구분이나 더욱 상세한 구분, 범주의 레벨조정 등을 신경쓰지만 그런 요인을 신경쓸수록 실제 사용자의 직관성과는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 분류불안있는 분류병자 정신차려. MECE는 도구이지 만능이 아니야.

 

MVP와 Prioritize

MVP를 겨냥하지 않았다. 기획자의 스위치를 켜면 망상이 시작되고 5개월은 족히 걸릴만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었다.

>> 책임감이라곤 1도 없는 겁쟁이 기획자가 실언하도록 허용하지 말아라.

>> Prioritize는 하던 방식으로 하면 된다. “Reset Everyday, Reset Everyweek.”

 

합리적인 당나귀는 굶어죽는다

언젠가부터 일은 하지 않고 옳은지 그른지 판단만 한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정리하고 하루 종일 판단을 내려도 한 발짝도 나는 나아가지 않았더라.

>> 복기도 이정도면 과한 것 같다.

 

몰입 가능한 환경의 조성 문제

몰입할 대상이 없었다. 시스템화와 위임을 너무 지향한 나머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도 모두 넘기게 되었다. 내가 넘겨버린 문제를 구성원이 풀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문제는 그들이 풀거나 풀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넘기는 것이 문제였다. 문제를 넘기고나니 나에겐 더 이상 문제가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떤 문제도 없는 삶은 비참했다. 존재의 가치를 잃었다. 몰입의 대상이 없는 삶. 허무함과 우울함이 밀려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당시엔 몰랐다. 

>>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었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모두 초 과몰입 상태에 빠졌었다.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것을 만들어내기는커녕 올바른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비단 사업뿐만 아니라, 앨범을 만들어내는 뮤지션에게서도, 기록을 갱신하는 운동선수에게서도,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학자에게서도 몰입의 상태가 발견된다. 나는 과몰입을 통해 자아를 잊어버릴 지경에 다다를 때에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할 정도로 대상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팀으로 일한다면 팀 전체의 자아가 망각시켜야 한다.

 

인사의 문제

사람을 고치려고 한 문제. 문제를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요인으로 정의하는 문제.

>> 기계의 문제는 깊이 들여다보아도 된다. 깊이 들여다볼수록 좋다. 모든 행위를 미분하고 작동원리를 파악해 오류를 수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사람은 깊이 들여다보면 안 된다. 깊이 들여다본다고 타인을 고칠 수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두 걸음 열 걸음 물러서야 한다. 열 걸음 쯤 물러서서 우리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면 부딪히더라도 어깨를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이다.

>> 노동이 사라진 시대, 판단만 남은 시대에 필요한 것은 역량 평가가 아닌 케미다.

>> <구심점>으로 추가 심층 복기

구심점 :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조직은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곳의 목적은 평등하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은 목적이 있다. 목표가 있다. 하나의 미션을 바라보고 치고 나가서 달성해나가는 것이다. 치고 나가서 달성하기에 적합한 조직마다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기업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황파악, 의견제시, 판단기준, 의사결정, 결론도출 등의 모든 활동에 스며들어 있다. 조직이란 일종의 유기체다. 조직이 겪는 현상은 다양하고 활동 또한 다양하므로 조직의 메커니즘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조직의 메커니즘은 곧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문제를 찾아내는 것 / 문제를 정의하는 것 /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는 것 / 문제해법을 실행하는 것 – 전체의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공정이나 방법론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공정과 방법론이라면 다른 상황에 옮겼을 때도 작동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다른 조직으로 옮겨지지도 않고, 옮기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은 이 곧 조직의 구심점이다. 모든 구성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같아야 한다. 같은 방식을 갖춘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같지 않아도 이 방식을 따르는 사람을 합류시켜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만의 방식”을 지키지 못할 사람은 핵심조직 안에 들여선 안 된다.

함께 뭉쳐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함께 문제를 풀어보면 드러난다. 별도의 평가를 할 필요는 없다. 문제를 함께 풀면서 각자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 문제를 정의하는 판단, 해법을 제시하는 창의력, 실행하는 수행능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여기서 ‘이끌든지’는 빠져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내 상황에선 소용없다. ‘이끌든지’는 적임자, 총책임자의 문제해결방식의 개별성과 독창성을 인정하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인데, 나는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도 없는 2명짜리 조직이다. 조직이 20명을 넘기기 전까진 ‘이끌든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럼 “따르든지, 비키든지”만 남는다. 조직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단순명료해졌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내 방식을 고집하고 내 구심점을 강요해야 한다. 구심점을 고집하는 것으로 많은 문제가 사라진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구심점에 맞지 않는 사람을 평가하고 해고할 필요도 없다. 구심점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알아서 모이고, 알아서 비킨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알아서 모일 수 있도록 구심점을 공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선택지가 없다고 마음을 쓸 필요도 없다. 없다면 그냥 없는대로 가면 될 일이다.

내 문제해결방법이 모든 문제를 풀진 못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괜찮다. 나는 모든 문제를 풀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문제만 잘 풀리면 그만이다. 그 문제를 푸는데 내 방법이 적절하지 않으면 개선하면 된다. 우선 내 방법이 옳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의심은 소용없다. 옳은지 그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에 나와있어도 나의 것이 아니다. 잔소리를 해줘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경청하더라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끝을 봐야만 내 방법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끝까지 가봐야 한다. 끝을 보는 것만이 문제해결 방법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끝을 볼 때까지는 내 방법을 믿어야 한다. 세상엔 다양한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푸는 조직도 많지만 문제해결방식이 문제의 갯수나 조직의 갯수만큼 다양하진 않다. 제대로 일하는 곳은 다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내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취향이 반영되거나 내가 창안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옳다고 배운 것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 방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옳은 방식이라 표현하면 좋겠다. 옳은 방식대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내 방식이 옳다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면 좋다. 문제를 찾고 정의하고 풀어나가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글로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 구심점만 생각한다면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 “우리만의 방식”을 가시화하기 위해 슬로건을 만들어 붙이거나 매일 외칠 수도 있다. 송파구에서 일잘하는 10가지 방법 포스터를 만들거나, 우수한 사례에 수상하는 등의 문화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동강령을 만드는 것은 실수다.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 기계어로 작성된 알고리즘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대한민국에 살기 위해 헌법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심점을 제시하는 것과 행동강령을 하달하는 것은 작동원리가 정 반대다. 바라보게 하는 것과 관리당하는 것은 힘의 작용이 정 반대로 일어난다. 구심점을 추구하면 구성원의 능동성을 이끌어내지만 룰을 하달하는 순간 피하달자는 수동적으로 변한다. 지시와 통제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피하달자에게 하달하는 순간 서로 마주보게 된다. 마주보면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푸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쓴 적은 있다. <1> <2>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다. 적어도 이 글이 선언된 덕에 조직에 맞지 않는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남은 구성원은 이 글에 공감하고 또 같은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적어도 명문화된 구심점은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글만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글이 쓰여져 있으면 근거가 된다. 명문화하고 선포해서 모든 의사결정이나 판단의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글만 쓰고 최소한의 시범을 보여주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우리만의 일하는 방식 없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삽질을 하는 안쓰러운 상태로 접어들었다.

간다. 오면 오는대로 같이 가고 없으면 없는대로 홀로 간다. <leadership lesson from dancing guy>

external brain으로서의 블로그

두뇌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인간은 사이보그다. 태생적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 외부의 물질과 기계의 도움을 받아 능력의 확장을 이룬다. 두뇌도 확장한다. 펜과 노트의 도움을 받아 기억력을 확장하고, 스프레드시트의 도움을 받아 연산력을 확장하고, 마인드맵의 도움을 받아 정리력을 확장하고, 정보습득도구의 도움을 받아 발상력을 확장한다. 어디까지가 내 두뇌인가? 두개골 안에 들어있는 뇌만 두뇌인가? 내가 쓰고 있는 두뇌 확장팩들까지 모두 합쳐 두뇌로 여겨야 한다.

이 블로그 또한 나의 external brain 중 하나이다. 두뇌를 그대로 전자기기에 옮기겠다는 뉴럴링크 프로젝트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내 살아생전 실현되는 모습을 보진 못하겠지. 구현된다 하더라도 블랙미러에 나온 모습처럼 완전한 인격이나 능력이 복제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는 의식활동의 부분적 작동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두뇌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전기신호와 같은 미시적 작동방식은 두뇌 활동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두뇌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활동결과로서의 의식이다. 그리고 의식 활동은 두뇌만으로만 이뤄지지도 않는다. 이 블로그는 내 두뇌의 일부다. 의식활동의 주요 기록공간이며, 각성을 촉진한다.

 

기록 : 한 사람을 정의할 때, 기계론적인 관점에서의 메커니즘만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의 존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개념을 모두 합친 범주를 넘어선다. 과거의 경험은 특정 인간을 정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환경적인 요인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은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사건은 독립적으로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에 개입하여 미래를 결정짓도록 만든다. 따라서 중요한 사건이나 감정은 존재의 일부다. 생각은 휘발성이 있고 기억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기록보조매체가 필요하다.

사유 : 사유의 도구는 언어다. 언어가 없다면 사유할 수 없다. 언어는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 나뉜다. 숙련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coding과 decoding의 프로세스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두 언어는 직관적이다. 하지만 음성언어는 단점이 많다. 음성언어는 기록하고 읽어들이는 과정에서 linear할 수 밖에 없어 시간의 제약이 발생하며, 저장과 관리 분류를 컴퓨터와 같은 보조장치를 통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규모있는 확장이 불가능하다. 사유의 주언어로 문자언어를 택했다. 글로 생각하고 글로 기록하는 것은 두뇌 확장을 위한 1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