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팩라이딩 개요
솔로로 라이딩하면 200W를 써야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피를 빨면 150W만 써도 30키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룹 중앙에 서면 130W만 써도 된다.
속도가 높아지면 이 차이는 더 커진다. 선두가 40키로를 유지하기 위해 350W를 써야 한다면 바로 뒤에서 피빠는 사람은 220W만 써도 되고, 그룹 중앙에선 200W만 써도 된다.
무리지어 바람저항을 이겨내는 진영을 활용한다면 FTP가 200W인 사람들이 모여서 FTP 250W인 사람의 솔로 라이딩보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또는 멀리 갈 수 있다.
모든 이동수단인 본질은 “더 빠르게, 더 멀리”이고,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효율적인 드래프팅과 팩라이딩 기술을 통해 우리는 혼자 달리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다.
▣ 드래프팅
가깝게 붙을수록 앞차가 일으킨 난류 속에 내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 주행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신 사고 위험은 커진다. 적당히 빨고 안전을 챙기자.
라이딩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2m 정도가 적당하다. 서로의 라이딩 패턴이 익숙해졌다면 1m까지 좁혀도 좋다. 하지만 1m보다 가까우면 너무 위험하다.
지그재그로 1m의 거리를 두고 달리면 시야도 확보되고 상황 대처의 거리도 있으며 정지가 필요할 때 좌우로 퍼질 공간도 마련되기 때문에 동호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진영이다.
▣ 팩라이딩의 원리
기량의 차이가 크다면 바람을 맞음으로 체력을 의도적으로 소진시킬 수 있다.
기량이 높은 사람이 2~3명 있다면 로테를 돌려도 된다.
로테를 돌리는 선두 중에서도 기량차이가 약간 있다면 60초/30초/10초 씩 로테유지시간을 달리해 체력소진을 배분한다.
5명이서 로테를 돌리되 4,5번은 선두에 서기 힘들 정도로 기량이 떨어진다면 로테방법은 2가지가 있다.
① 60초/30초/10초/0초/0초로 돌리는 방법
② 1,2,3번은 로테가 끝난 후 3번 자리로 껴들어가는 방법
▣ 체력한계 공유의 필요성
팩 구성원 간 서로의 체력한계를 공유해야 한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남아도는 사람은 자신이 한계에 임박했음을 알려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알리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내가 힘이 남는다면 선두에 서서 바람을 맞아 팩에 기여하면 되고, 내가 힘이 부친다면 팩 후미에 서서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야 한다.
체력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버리면 나중에 팩에 합류할 때 바람을 직접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에너지 손실을 혼자 감당하게 되고, 장거리 라이딩이 될 경우 피로도는 더욱 누적된다.
결과적으로는 팩 선두로 2교대를 돌린 사람보다 혼자 흘러서 뒤늦게 쫓아온 사람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결과가 될 것이다.
흐르기 시작하면 에너지 소진 격차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흐름이 반복될수록 팩 전체의 속도를 더 낮추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 번 흘렀다면 속도를 아예 늦춰 최대한 체력을 보존해 합류해야 하는 것이 좋다.
일부 구성원만 바람을 맞는 것을 미안하다거나 불평등하다고 여겨선 안 된다. 내 체력을 보존하는 것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팩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이다.
팩라이딩은 함께 간다는 전제가 있다. 퍼포먼스가 가장 떨어지는 구성원을 기준으로 속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팩의 최저속도를 더 낮추지 않게 하려면 나의 체력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존하고 효율적인 주행을 해야 한다.
▣ 팩 찢기
팩의 크기가 너무 크면 아코디언 효과가 발생해 후미의 부담이 커진다. 선두의 가속과 감속이 후미로 전달될 때 증폭되어 급가속과 급감속을 하게 된다. 이는 후미에 급격한 체력부담을 안긴다. 그래서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2~3번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코스에 변수가 많고, 서로 라이딩 호흡도 익숙하지 않으며, 팩라이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껴있거나, 평속 30이상으로 달릴 계획이라면 찢어야 한다.
난 3~5명의 팩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 커뮤니케이터의 역할
기량이 부족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 말을 끊임없이 하는 것은 팩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다. 타인의 체력한계를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챌 사람은 없다.
신호는 후미에서 선두로 전달되어야 한다. 선두는 뒤돌아보기 힘들다. 뒤돌아봐서도 안 된다. 선두는 바람을 이겨내고 도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두 가지 역할 이외에는 다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
5명 이상의 팩이라면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뒤에서 중간으로 중간에서 다시 앞으로 신호를 전달해야 한다. 팩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페이스 조절을 커뮤니케이터가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가도 좋다는 신호 : 붙었다/더더더/오라이/높여
늦춰야 한다는 신호 : 흘렀어/같이가/못붙어/천천히
오라이는 alright을 말한건데 일본어처럼 들렸다면 기분탓이다. 내가 마 경상도 사람이어가…
▣ 솔직한 의사표현의 필요성
힘이 넘치는 굇수도 힘에 부치는 초급도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야 그날의 라이딩 콘셉을 결정할 수 있다.
초급이 굇수에게 맞추려고 무리하는 것도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굇수가 초급을 배려하면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달리는 중간에 라이딩 콘셉을 바꾸는 것도 모두에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2019년 오크밸리 그란폰도에서 울분이 폭발해버린 미녀라이더가 기억난다. 처음엔 자신의 완주를 위해 서포트해줄 것처럼 보였던 남성들이 라이딩 도중 변심해 그녀를 버리고 질주한 것이다. 라이딩 시작 전에 솔직하게 자신의 라이딩 목적을 알렸다면 서로에 대한 원망도 아쉬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달리려고 마음잡고 나왔는데 마음껏 달리지 못하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보통 선두가 가장 열심히, 의욕적으로 타려고 하기 때문에 기량 차이가 클수록 아쉬움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기량이 부족한 사람의 부족의 정도를 솔직히 공유한다. 서로 기량의 차이가 20%정도일지, 30%일지, 40%이상일지 측정한다.
기량의 부족을 커버하며 달릴지, 커버하지 않고 달릴지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우선 결정권을 가진다.
이 의사결정 방법론은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공리주의>에 의거한다.
▣ 라이딩 콘셉 개요
아래 라이딩 콘셉은 기량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을 전제로 작성되었다. 기량차이가 없다면 이런 콘셉 구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기량차이가 없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기량차이가 난다고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안 된다.
자전거 좀 타려고 생업을 미룰 순 없지 않은가.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자. 자전거가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라이딩 콘셉과 코스의 상관관계
기량 차이는 곧 선두의 에너지를 의도적으로 소진시킴으로 좁힐 수 있다.
평지라면 라이딩에 가해지는 저항의 대부분이 공기저항이기 때문에 40%의 기량차이가 나더라도 팩라이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저항의 대부분이 중력이기 때문에 누구나 같은 저항을 받고, 때로는 후미가 더 큰 저항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때문에 팩 구성원 간 기량차이가 크다면 평지 중심의 코스를 선택하고, 기량차이가 크지 않다면 업힐 위주의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 라이딩 콘셉 제안
[사이좋은 토끼와 거북이] 후미 최저속도 기준 함께가기 라이딩
모두가 가장 느린 페이스로 맞춰 가는 것이다. 선두는 아마 근질근질할 것이다. 후미는 미안해할 것이다. 좋은 콘셉이 아니다.
[그룹1]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오픈 구간에서는 버리고 중간 지점에서 모여서 다시 팩을 이루길 반복한다.
선두의 남는 에너지는 평지 바람막이로 소진시킨다.
구성원의 퍼포먼스가 30% 이상 벌어진다면 이 방식으로도 팩을 구성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룹2] 오픈과 팩라이딩의 적절한 배분 & 선두의 에너지 의도적 낭비
평지에서는 드래프팅 효과로 퍼포먼스가 40% 차이나는 사람도 후미에 붙으면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 팩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업힐에서는 선두와 후미의 소진 에너지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언덕을 몇개 넘다보면 선두와 후미의 잔여배터리양이 크게 차이날 수 있다.
업힐에서 발생하는 잔여 배터리양을 선두가 소진시키면 기량차이와 상관없이 함께 체력을 고갈시켜나갈 수 있다.
방법 ① 선두는 업힐을 두번탄다.
방법 ② 선두는 업힐을 오른 뒤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다시 내려온다. 후미를 만나서 다시 꼭대기를 찍는다.
방법 ③ 쉬는 시간에 선두는 혼자 인터벌 5번 친다.
[그룹3] 팩 찢기 & 코스 찢기
대회 코스가 그란폰도와 미디어폰도로 구분되듯이 실력에 따라 코스를 분리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뺑뺑이 코스라면 그룹을 나눠 목표 회차수를 달리 설정할 수도 있다.
후미그룹은 최단직선거리로 코스를 완주하고, 선두그룹은 남은 체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의도적 우회용 코스를 추가할 수도 있다.
함께 달린다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레이싱] 흐르면 버린다. 버리기 위해 짼다. (더더마 벙)
흐르는 사람을 버리기로 약속하면 각자의 라이딩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비슷한 퍼포먼스의 사람들끼리 묶이게 된다.
팩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후미에게도 요구되는 최소한의 파워가 높아지기 때문에 아무리 선두보다 효율적으로 바람저항의 이득을 보다라도 커트라인이 생겨 흐르게 된다.
피를 빠는 것도 기술이기에 파워와 스태미너가 남아 있더라도 효율적으로 피를 빨지 못해 팩이 분리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높은 저항을 유지하는 지구력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서 팩이 분리되기도 한다. 팩이 너무 길어지게 되면 작은 속도 변화가 후미에서는 크게 증폭되게 된다. 선두 가속에 대한 반응을 즉각 하지 못함으로 격차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며 함께가는 것이 리드아웃이고 이를 이용하여 분리시키는 것이 어택 혹은 BA다.
어느정도 팩이 분리되면 선두와 후미의 실력격차가 크지 않게 된다. 기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위에 언급한 팩 분리요인들이 적게 작용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팩이 유지될 수 있다.
▣ 마무리
구성원간 퍼포먼스가 30%이상 차이난다면 선두는 선택해야 한다.
후미를 찢고 레이스를 할지, 레이스는 포기하고 서포트 모드로 라이딩할지.
어떤 선택지든 장단점이 공존하고 선두가 결정할 일이다. 최선을 다해 체력의 한계에 몰아붙이는 것의 장점이 있다면 동료와 함께 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동료와 함께 달리는 즐거움의 장점이 있을 땐 만족스러운 운동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어떤 선택에도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반대로 아쉬운 부분도 남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선택이 그러하다고 법륜스님이 얘기했다. 때문에 콘셉을 한 번 정했다면 마음의 미련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