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렌치 런더리에서 근무한 15명의 요리사가 토마스 캘러에게 배운 것

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2014년 6월 FOOD&WINE에 실린 내용을 번역,재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원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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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나파밸리Napa valley지역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다. 토마스 캘러Thomas Keller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중 하나인 더 프렌치 런더리The french laundry이다. 2014년은 이 레스토랑이 문을 연 지 20주년이 되던 해였다. 20년 동안 이 레스토랑에서 토마스 캘러 셰프와 함께 일한 요리사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고, 헤드 셰프에게 영향을 받은 요리사는 세계 각지에서 아직도 그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다. 후배 요리사들이 전하는 토마스 셰프와의 기억과 프렌치 런더리에서 배운 요리 팁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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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pixgood.com
직접 만든 식초 맛보기 Tasting vinegar

프렌치 런더리는 초창기 시절부터 셰프가 직접 만든 레드와인 식초를 사용했다. 어느 날인가 그가 만든 비네거가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설탕을 식초에 담근 뒤 직접 입으로 빨아먹는 것을 보았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해야만 식초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설탕의 단맛이 식초의 자극적인 신맛을 덜어준다는 설명도 함께. 이전까지 설탕으로 식초의 맛을 보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이후 내가 직접 해보니 왜 그가 그렇게 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 에릭 지볼드Eric Ziebold

 

생선 굽기 Searing Fish

생선을 어떻게 구워야 하는지 배웠다. 특히 팬에 굽는 생선요리에는 조금 과할 정도로 뜨겁게 달궈진 팬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뜨겁게 두른 팬에 오일을 두른 후 생선 비늘부분을 바닥에 닿도록 구우면 금세 표면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보기만 해도 바삭한 식감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테크닉은 새로 들어온 모든 요리사에게 셰프가 직접 알려주는 요리 팁이다. 나는 이 기술을 찬 음식을 다루는 역할garde manger에 있을 때 어깨너머로 배웠다. 셰프가 당신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더라도, 항상 주의에 신경을 쓰면서 배울 것을 추천한다.
– 티모시 홀링워스Timothy Hollingsworth

Timothy Hollingsworth
source : www.oregonlive.com
언제나 신선한 허브를 사용할 것 Using Fresh Herbs

프렌치 런더리에서 일하려면 직접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봐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 규칙과 그곳에서 일하게 된 아내 덕분에 나는 토마스 캘러 셰프의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요리는 롭스터를 곁들인 오르소 파스타였다. 크림과 마스카포네 치즈, 차이브의 향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후에 나는 이 요리에 착안해서 송로버섯-마카로니 치즈라는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 아무튼, 당시에 느꼈던 크림의 향과 차이브 향의 조화처럼 향긋한 허브의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매 요리 직전에 허브를 잘라와야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결과 알게 됐다. 아마 요리에 사용하기 직전 손질을 하거나 잘라오는 작업은 토마스 캘러 셰프가 최초로 하지 않았을까?
– 스티브 코리Steve Corry

 

주방 설계 Organizing the kitchen

내가 프렌치 런더리에서 배운 점 중에 하나는 바로 정리정돈이다. 엉망진창이던 우리 집 주방도 내가 일했던 주방처럼 바꿀 정도였다. 시리얼 박스는 작을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정렬하고, 개봉한 날짜를 적어 놓기 시작했다. 실제 프렌치 런더리 주방에서는 마스킹 테이프를 사용하는데, 이 테이프는 물이 묻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고, 잉크가 번지지도 않았다. 나는 이 테이프를 집에서도 잘 써먹었다. 이미 조리된 음식 통에 붙여 놓으면 마치 배달 중국 음식점이 사용하는 것처럼 수많은 통을 획기적으로 정돈할 수 있다.
– 리차드 블레이스Richard Blais

 

효율적으로 일하기Working Efficiently

프렌치 런더리의 주방은 매우 협소하다. 그렇기에 모든 일은 효율적으로 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나는 채소의 껍질을 제거할 때 종이 호일이나 키친 타올을 도마 위에 깔고서 작업을 하곤 했다. 작은 습관이 도마를 두 번 닦지 않아도 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게 했다.
– 맷 루이스Matt Louis

 

낙담할 상황에도 여유를 가질 것 Making Stock

송아지 뼈로 우려낸 블랑켓 드보Blanquette de veau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토마스 셰프는 육수 만드는 작업을 도왔다. 육수에 사용할 송아지 뼈를 골라내고, 송아지를 어떻게 손질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알려줬다. 세 마리째 다듬는 중에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나는 실수로 3일간 우려낸 육수를 바닥에 엎어버렸다.
그가 다시 작업장에 나타났을 때 그는 분명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절대 소리 지르지 않았다. 그저 내 어깨 위로 팔을 얹고선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그의 제스처에는 ‘우리 모두 실수를 하니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가 담겨 있었다.
– 그랜트 애커츠Grant Achatz

Grant Achatz
source : 1080plus.com
토끼 고기 손질하기 Butchering rabbit

어느 날 토마스는 행사에 쓸 토끼 100마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를 하는 주방에서 100마리 토끼를 손질할 공간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주방에 다른 사람이 없는 시간인 밤에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퇴근 후 집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에 다시 주방에 나왔다. 그리고 밤새도록 토끼 100마리를 준비해뒀다.
아침에 출근한 토마스 캘러 셰프는 나에게 고마움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날의 경험 이후로 토끼 손질하는 법을 잊을 수가 없다.
– 조나단 베노Jonathan Benno

 

진정한 레스토랑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 Understanding Hospitality

스타지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토마스 켈러는 나에게 앞치마를 달라고 했고, 나는 무슨 잘못을 했는가 싶어 지레 겁을 먹었다. 그는 내 앞치마를 고이 접더니 그의 사무실로 오라고 이야기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든 음식이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맛있는 식사였지만, 그 음식보다 더 감동을 준 건 그의 진심 어린 따뜻함과 배려였다. 이후에 다시 그의 레스토랑을 다시 방문했고, 매번 경험한 식사는 내 인생에서 지우기 어려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마이클 볼타지오Michael Voltaggio

 

양파를 씻어서 사용하는 방법 Mellow onion

내가 프렌치 런더리 카나페 섹션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셰프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양파를 씻어서 쓸 거지?”라고 물었다. 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듣지를 못했고, 당연히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어서 “왜 씻어서 써야 하죠?”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나보다 큰 키의 그가 자신의 어깨 사이에 날 감싸 안은 채로 양파를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양파를 미리 물로 씻으면 매운맛이 빠지거든”이라고 설명해줬다. 난 그저 작은 아이처럼 같이 양파를 씻을 수밖에 없었다.
– 코리 리Corey Lee

Corey Lee
source : greensandbeans.wordpress.com
완벽한 가스파쵸를 만드는 비결 Perfecting gaspacho

프렌치 런더리 바깥에는 텃밭이 하나 있다. 아마 그 텃밭에서 나는 채소는 그 지역 최고의 품질일 것이다. 가스파쵸를 만들 때면 그 텃밭에서 자란 채소를 썼는데, 잘 익은 토마토와 오이, 양파, 마늘, 피망을 잘 손질해서 사용했다. 향긋한 올리브유와 식초, 그리고 약간의 밑간을 해놓고 절여두면 가스파쵸의 풍미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해진다.
– 아리 바이스바서Ari Weiswasser

 

완두콩을 데칠 때 소량의 설탕을 써라 Sweetening peas

내가 프렌치 런더리에서 일하기 전에는 완두콩을 데칠 때 설탕을 사용하지 않았다. 끓는 소금물에 설탕을 더하면 완두콩의 본영의 맛이 살아난다는 것을 셰프의 조언 덕분에 알게 됐다. 이 테크닉은 완두콩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프나 주요리에 사용할 가니쉬용 채소를 만들 때도 좋다. 카나페를 만들 때도 좋은 요리 팁이다.
– 라클랜 마키논-패터슨Lachlan Mackinnon-Patterson

 

테이스팅 메뉴에 가장 좋은 스타터, 샴페인 Drinking Champagne

지금은 어느 레스토랑이건 테이스팅 메뉴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테이스팅 메뉴를 가장 먼저 시작한 레스토랑 중에 하나가 바로 프렌치 런더리다.
그곳에서 내가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코스 전 음료로 샴페인의 우수함이다. 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는 약간의 산미가 있는 가벼운 술이 좋다는 것도 일하면서 알게 됐고, 지금도 수많은 식전 술 중에 최고는 샴페인이라고 생각한다.
– 바비 스터키Bobby Stuckey

 

함께 복숭아씨를 발라냈던 경험 Cracking peach pits

나는 아직도 프렌치 런더리에서의 마지막 날을 잊지 못한다. 그때 우리는 푸아그라에 쓸 소스에 쓴맛이 나는 복숭아 속씨를 빼낸 겉 씨를 사용했다. 망치를 들고 속씨를 빼는 작업은 모든 사람이 귀찮아했다. 그날 토마스 셰프는 굴러다니는 작은 겉씨 때문에 끙끙대는 나를 텃밭으로 데리고 나왔다. 우리는 벽돌로 시원하게 겉씨를 내리폈다. 덕분에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나눴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떠나는 후배 요리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다.
– 에릭 앤더슨Erik Anderson

Erik Anderson
source : www.foodrepublic.com/ 사진을 찍고 있는 에릭 엔더슨 셰프

맛을 내기 위한 소금 간 맞추기 Seasoning to taste

내가 토마스 캘러에게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소금의 꽃이라 불리는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을 뿌리는 것이다. 요리의 모자란 간을 맞추기도 할 수 있지만, 특유의 소금의 식감을 표현할 수도 있다. 토마스 셰프는 이 소금의 바삭한 식감을 좋아했으며, 실제로 주머니에 항상 소금 상자를 가지고 다닌다. 내가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일했을 때 우연히 그에게 요리를 대접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소금을 음식 위에 뿌렸으며, 난 그걸 본 이후로 그가 다시 방문했을 때 사용할 플뢰르 드 셀을 준비해 두었다
– 가빈 케이센Gavin Kaysen

 

냉동고의 공간 절약하는 방법 Saving freezer space

내가 일하던 당시에는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냉동고를 사용했다. 당연히 정리정돈이 필요했고, 우리는 소스와 육수를 진공 포장해서 지퍼백에 넣은 채 냉동 보관했다. 하지만 지퍼백 사이에 있는 수분이 함께 얼어버리면서 여러 지퍼백이 서로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지퍼백 사이마다 종이 호일을 깔면서 좀 더 쉽게 육수나 소스를 꺼낼 수 있게 됐다.
– 라이언 폴리Ryan 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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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사진 출처 – http://www.latimes.com/

“문신, 요리사 전용은 따로 있다” 셰프 타투 국내 요리사편

문신은 왜 하는 걸까? 정답이랄 것도 없는 게 “당신은 머리 스타일를 왜 그렇게 했느냐”라는 질문과 별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심심하기에 했을 수도 있고, 소중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겁을 주려고 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이미 많은 사람이 타투를 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타투는 패션 감각을 극대화 시킨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시장전문조사기업 트렌드모니터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문신에 대한 인식 변화 추이를 조사했다. 설문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근 타투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68.9%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54%는 ‘타투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응답했다.
<조사결과 바로 가기>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타투는 불법 시술에 포함된다. 의료법에는 바늘로 피부를 뚫는 행위를 의료행위로 간주, 의사 면허가 없는 곳에서는 불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의사 면허가 없는 국내 타투이스트들은 그 활동 폭을 해외로 넓혀 가고 있다. 미국 유명가수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팔에 하회탈과 한글 문신을 새겨 넣은 사람도 한국인 타투이스트 조승현 씨다.

이렇듯 문신에 대한 욕구와 시선이 대중화되면서 요리사들의 개성 표현에도 타투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미 영어권에서는 문신의 한 종류로 셰프 타투Chef’s Tattoo가 자리 잡았고 아기자기하고 탐나는 타투가 즐비하다.
<해외 셰프 타투 바로가기>

그렇다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셰프 타투를 한 요리사는 없을까? 궁금했다. 타투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들이 말하는 ‘문신을 한 소탈한 이유’를 들어보자.

 

| 에릭 킴

에릭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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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36 ②소속 메종 드 라 카테고리 헤드셰프 ③타투는 언제 했나? 2011년 ④타투를 한 이유는? 나만의 색을 표현하기 위해 ⑤어떤 의미인가? 수술 자국이 남아있었는데, 이왕 하는 김에 내 케릭터를 좀 더 부드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지금까지 별다른 불이익은 없었다.

스페인에서 일할 때 타투를 처음 하게 됐다.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타투 샵에서 직접 도안을 챙겨가서 새겼다. 당시 ‘니모’라는 애니매이션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자칫 지금 이 상어 타투가 열대어가 될 뻔 했다. “니모는 왠지 나이 먹고 나서 후회할 것 같았어요. 다행이에요”

스페인어를 잘 못 하는 자신을 위해 동료 3명이 함께 타투 샵에 같이 가줬고, 친절하게 알아서 설명도 대신해주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밝혔다. “타투 자체도 좋지만, 당시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더 좋게 남아있어요.” 귀여운 타투 덕에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요리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는 에릭 셰프다.

 

| 박영호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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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34 ②소속③타투는 언제 했나? 2011년 ④타투를 한 이유는? 소금이 좋아서 ⑤어떤 의미인가? 그냥 좋아서 새겼다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취직 못 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자고 있을 때 엄마가 침을 발라 지우고 계시더라

유쾌한 요리사. 지인인 현직 서예가가 직접 도안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소금’이라는 단어가 겹쳐서 보인다. 처음 본 타투이면서 위치가 특이해 분명 깊은 뜻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물었다. 돌아온 답은 “그냥요. 뭐 별거 없어요. 소금이 좋아서 했어요.” 이 문신은 요리사라는 직업과 잘 어울리는 것 같고, 해외에서 일할 때 모르던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했다며 좋은 점이 더 많이 이야기 했다. “지금은 여자친구가 말려서 못하고 있지만 나중에 오른손 바닥에 버터나 후추, 설탕 중에 하나를 마저 넣고 싶다”

 

| 로이든 킴

로이든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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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36 ②소속 – ③타투는 언제 했나? 2010년 ④타투를 한 이유는? 요리사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⑤어떤 의미인가? 처음으로 선물받은 셰프나이프를 크기와 모양대로 새겼다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유명 호텔에 이력서 넣었다가 탈락 된 경험은 있다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 타투라고 말하는 로이든 킴. 사진에 나온 칼 모양 말고도 목 뒤에 물과 불을 작게 그렸는데, 색을 더 입혀야 하는 상태라서 사진 촬영은 불가. 몸에 8개의 문신이 더 있다는 그는 호주에서 3개 우리나라에서 2개 뉴질랜드와 프랑스에서 각 1개씩을 그렸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를 상징하는 문신을 더 새길 예정이다. “아무리 문신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남아있어요. 되도록 문신은 내 길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고 판단될 때 해야 후회 안 할 것 같아요.”

 

| 곽승식

곽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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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31 ②소속 더스프링스 탭하우스 ③타투는 언제 했나? 2014년 8월 ④타투를 한 이유는? 요리사라는 걸 잘 보일 수 있어서 ⑤어떤 의미인가? 요리사가 가장 많이 다루는 도구는 역시 칼이니까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별다른 불이익은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서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남자가 쪼끄마한 게 그게 뭐냐고. 등에다 큰 칼을 새기라고 하셔서 되려 제가 더 놀랐어요”라고 말하는 곽승식 셰프. 그의 동료들은 문신 정도는 자연스럽게 여기고 대부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일에 서슴없기 때문에 편하게 일하고 있단다. 손님과도 문신 때문에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 안재희

안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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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31 ②소속 3에타쥬 ③타투는 언제 했나? 올해 5월 ④타투를 한 이유는? 내 가게를 열면서 의미를 남기고 싶었다 ⑤어떤 의미인가? 요리사들이 칼만큼이나 스푼을 많이 쓴다 그만큼 소중하다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기독교 신자이신 부모님에게 실망을 드릴까 걱정을 많이 했다. 천천히 말씀드릴 예정이다.

안 셰프는 압구정동에 직접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사실 2년 전에 도안까지 그렸었는데 부모님 생각에 타투를 못했었다. 그러다 해외에서 요리사는 문신해도 전혀 문제없는 직업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손님에게는 직업 정신이 강한 요리사라는 이미지를 선사하고 싶었고 또 그런 의미로 문신했다고도 밝혔다. “한마디로 내 식당에 들르는 손님에게 최고의 식사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 이광희

이광희

이광희

①나이 34 ②소속 셰플로 ③타투는 언제 했나? 2004년 ④타투를 한 이유는? 원래 타투를 좋아했다 ⑤어떤 의미인가? 요리사니까 나에게 어울리는 타투가 필요했다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부모님이 싫어하셨다. 더 이상은 하지 말라고만 당부하셔서 안하고 있다.

이광희 요리사는 토목학을 전공했다가 9년 전부터 서울로 올라와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타투 이외에도 피어싱과 스트릿 문화에 빠졌었다고도 밝혔다. “다른 타투도 할 수 있었는데, 나와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타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나한테 제일 어울리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되더라.” 타투는 한번 하고 나면 또 하고 싶어지는 중독성이 있다며 앞으로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더 해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 경동현

경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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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이 21 ②소속 현대조리사관학교 ③타투는 언제 했나? 2015년 4월 ④타투를 한 이유는? 내가 요리사를 정한 것을 후회하지 말자 ⑤어떤 의미인가? 이 요리사는 이름없는 요리사다. 이름 없는 요리사로 남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요리를 끝까지 하자 ⑥문신을 해서 불이익은 없었나? 아직은 없다

경동현 학생은 현업에 발을 딛기 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문신을 했다고 말한다. 중학교 때까지 프로 야구 선수를 꿈꾸었던 그는 팔 부상으로 진로를 요리사로 바꾸게 됐다. 지금은 서양식을 잘하기 위해 캐나다에 요리 유학을 다녀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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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은 왜 하는 것일까?’ 취재 중심에 있던 질문이다. 그러나 이 의문의 대답은 허무하게 나왔다. ‘요리사가 음식만 잘하면 됐지’라는 기준에 못지않게 요리사 본인의 만족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요리사는 자기 만족도가 높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는 직업이 아니던가? 타투는 요리사의 자기 만족도를 높이는 좋은 도구가 된다.

요리사라면 꼭 봐야할 TED강연 12선

2011년, 대한민국에 지식강연 열풍이 불었다. 바로 TED 열풍이다. TED는 퍼뜨릴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Ideas Worth Spreading이란 모토로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1984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재단이다.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 세 분야의 앞글자를 땄다. 이 이외에도 심리학, 철학, 과학, 음악, 미술, 운동, 교육 등 다양하게 분야를 넓혀나갔다.

TED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비용은 아주 비싸다. 입장권이 한국 돈으로 600만 원을 호가한다.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초대를 받아야만 구매할 수 있단다. 비싼 입장료, 비공개 진행이라는 방식이 ‘퍼뜨릴만한’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어긋났다. 그래서 2007년도부터는 운영 방식을 조금 비틀기 시작한다.

TED위원위는 전 세계인이 지난 TED 강연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번역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TEDxOOO’의 이름으로 주최를 원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라이선스를 배포했다. 한국은 지금까지 30개 이상의 TEDx 이벤트를 개최함으로 인도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TEDx 프로그램을 진행한 국가가 됐다.

그 뜨겁던 강연 열풍이 이내 식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15분’, KBS의 ‘강연 100도씨’, tvN ‘스타 특강쇼’와 같은 유명 프로그램이 TED 열풍 이후에 정착된 한국형 강연프로그램들로 TED의 지식공유에 대한 비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식강연 열풍으로 인해 이전엔 강연에 초대받지 못하던 더욱 다양한 사람이 연사로 초청되고, 더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공유되면서 지식융합의 시대가 열렸다. 열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 전문적인 지식이 상호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지식 공유의 시대가 열렸다.

TED는 음식과 요리라는 분야 또한 놓치지 않았다. 하루에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인류에게 이만큼 중요한 이슈거리가 또 있으랴. TED.com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상 중 요리사가 꼭 봐야 할 강연으로 12개 선별했다.

Editor’s Note : PC에서는 한글 자막이 보이지만 모바일에서는 자막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바일 이용자는 TED 앱을 설치 후 이용하시면 한글 자막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슨 미어볼드 – 요리와 생각의 전환 | Nathan Myhrvold – Cooking as never seen before (10’05”)

네이슨 미어볼드는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한 뒤, 세계 바비큐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고 야생동물 사진작가, 화산 탐험가로도 활동한 요리사이기도 하면서 책 저자인 척척 만물박사다.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낸 최초의 서적으로 요리, 과학, 예술을 한 곳에 집대성했다는 극찬을 받는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 요리가 진행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횡단면으로 잘라 보여준다. 요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시각적으로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시도한 사진 작업 과정을 공유한다.

 

호마로 칸투와 벤 로셰 – 요리 연금술 | Ben Roche and Homaro Cantu – Cooking as alchemy (09’34”)

분자요리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화학적 실험과 미식 분야를 접목함으로 주목받은 시카고의 모토Moto 레스토랑. 오너 셰프와 페스트리 셰프가 함께 나와 주거니 받거니 자신들의 작업물을 소개한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의 요리법 또는 먹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수박으로 참치를 만든다거나, 음식 맛이 똑같이 나며 음식 모습이 프린트된 식용 사진이라거나. 과학기술은 먹거리에 얼마나 큰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게 만드는 영상이다. 호마로 칸투는 15년 4월 14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관련 기사 보기>

 

마르셀 디키 – 곤충을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잖아? | Marcel Dicke – Why not eat insects? (16’31”)

마르셸 디키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식단에 곤충을 올려지길 기대한다. 그 전에, 이름만 들어도 구역질나는 곤충요리를 입맛이 당기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겠다. 비위가 약한 요리사와 식도락가들에게 ‘메뚜기나 애벌레도 고기와 견주어 부족할 것 없는 맛, 영양, 친환경성을 갖추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곤충요리는 세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이미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캐롤라인 스틸 – 식품은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가 | Carolyn Steel – How food shapes our cities (15’40”)

런던 정도 규모의 도시에서는 매일 3천만 명분의 음식이 소비된다. 어디서 그 많은 양의 음식이 오는 걸까? 건축가 캐롤라인 스틸은 ‘도시 먹여 살리기’라는 일상적인 기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고대 식량 수송로의 형성 과정을 통해 식품이 오늘날의 도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피터 레인하르트 – 빵에 대해 | Peter Reinhart – The art and craft of bread (15’34”)

제빵사인 피터 레인하르트는 매번 빵을 구울 때마다 감동을 금치 못한다. 빵 부스러기 하나하나 안에 그의 진심을 담는다. 밀, 이스트, 녹말 그리고 열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가장 사랑받는 주식 중 하나인 빵. 그는 이 과정을 찬양한다. 강연을 듣고 나면 한 조각의 빵이라도 평범하게 보이진 않을 것이다.

 

제이미 올리버 –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이유 | Jamie Oliver – Teach every child about food (21’53”)

TED Prize 수상자인 제이미 올리버가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턴에서 추진한 비만 퇴치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음식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 맹공을 퍼붓는다.

 

마크 비트맨 – 우리의 잘못된 식생활 | Mark Bittman – What’s wrong with what we eat (20’08”)

뉴욕타임즈의 음식작가Food Writer인 마크 비트맨은 우리의 잘못된 식생활을 익살스럽고 열정적으로 지적한다. 과도한 육식, 적은 양의 채소, 너무 많은 패스트푸드와 갈수록 멀어지는 가정 요리. 그리고 이런 현상은 왜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버크  베어 – 우리의 음식 시스템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 Birke Baehr – What’s wrong with our food system (05’14”)

11살 버크 베어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주요 공급원에 대해 말한다.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그림 같은 풍경과는 거리가 먼 산업화된 농장이다. 이 꼬마 아이는 낙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산업화 농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친환경적이고 지역화된 농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댄 바버 – 푸아그라 이야기 | Dan Barber – A foie gras parable (20’24”)

Taste3 콘퍼런스에서 셰프 댄 바버가 연사로 올라왔다. 그는 스페인의 작은 농장에 대해 소개한다. 푸아그라, 기름진 거위의 간을 얻기 위해 강제로 사료를 주입해 살을 찌우는 비인간적인 사육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도 양질의 푸아그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셰프뉴스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기사로 읽기>

 

댄 바버 – 내가 생선을 사랑하게 된 과정 | Dan Barber – How I fell in love with a fish (19’02”)

셰프 댄 바버는 오늘날 수많은 요리사가 직면한 딜레마에 정면승부를 건다. 어떻게 하면 생선을 계속해서 메뉴에 올려놓을까? 철저한 자료 조사에 기반한 지식과 능청스러운 유머감각을 섞어가면서도 ‘지속가능한’ 생선을 찾아 나선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마침내 스페인에서 혁신적인 양식법으로 길러진, 또 너무나도 맛있는 생선을 발견한 미식가의 황홀경을 이야기한다.

 

트리스트람 스튜어트 – 전세계적인 식량낭비 스캔들 | Tristram Stuart – The global food waste scandal (14’12”)

서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거의 절반을 버리고 있다. 먹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트리스트람 스튜어트는 식량 자원의 책임 있는 사용을 호소하기 위해 식량 낭비에 대한 충격적인 데이터를 폭로한다.

 

루이스 프레스코 – 어떻게 전 세계인을 먹여살릴까? | Louise Fresco – We need to feed the whole world (18’00”)

루이스 프레스코는 우리가 왜 대량 생산된 슈퍼마켓 식빵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해를 끼치지 않는 대량 생산이 세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작은 빵집과 전통적인 식량 생산 방식에 아직 그 역할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레스토랑 메뉴에 숨겨진 8가지 심리학 비밀

레스토랑의 메뉴판은 단순히 음식의 종류만 나열된 것이 아니다. 셰프, 기획자, 컨설턴트 등 수많은 전문가가 동원되어 만들어진 복잡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더 쉽게 읽히고, 식당의 브랜드를 강조할 수 있도록 갖은 전략을 적용한다.
실제로 메뉴판은 손님이 어떤 음식을 고를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뿐더러, 수익에도, 고객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제까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레스토랑 메뉴 뒤에 숨겨진 8가지 심리학 비밀’을 소개한다.

 

1. 선택사항 제한하기

메뉴판에 음식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손님은 불안감을 느낀다. 심리학에서 익히 알려진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이다. 선택권이 많아질수록 “내가 고른 음식보다 다른 음식이 더 맛있는 것이라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카테고리당 7개의 음식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에피타이저, 타파스, 메인메뉴, 각각 큰 범주에 속하는 음식들이 7개를 넘어선 안 된다.
“만약 7개 이상의 음식을 메뉴에 넣을 때는 손님들이 압박감을 느끼고 혼란해 합니다.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불안해진 사람들은 예전에 먹었던 알고 있는 음식을 선택하게 되죠.” 메뉴 개발 전문가 그렉 랩Gregg Rapp의 말이다.

몇 레스토랑은 이 중요한 규칙을 어기고 있다. 맥도날드를 예로 들 수 있다. 맥도날드는 처음에는 메뉴 수가 적었지만, 지금은 140개 이상의 메뉴가 있다. 이로 인해 2015년도 1분기의 지점 매출이 11% 감소했다.
“우리가 메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곧 고객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고객들이 식당을 떠날 때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음식의 맛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인 이유가 더 큽니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애런 앨렌Aaron Allen의 말이다.
고객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으로 식당 문을 나가게 된다면 돌아오게 될 가능성도 작아지게 된다. 매출의 70% 이상이 재방문 고객으로 이뤄진 식당이라면 ‘고객 재방문’을 최우선이자 궁극적인 목표로 세워 매일 곱씹어야 한다.

 

2. 사진 추가하기

근사하게 나온 음식 사진을 메뉴 옆에 놓아두는 것만으로 매출의 30%를 높일 수 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연구 결과, 두 그룹으로 나뉜 실험 대상은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통해 샐러드를 본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70%나 더 많은 샐러드를 점심시간에 주문한다는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에 나타난 이미지를 한 번 보는 것은 실제로 바로 앞에 놓인 음식을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더욱 효과가 좋습니다. 우선 사진에 보이는 걸 달라고 말할 테니까요.” Information System의 부교수 브라이언 멘네케Brian Mennecke의 말이다.

이 효과는 출력된 사진보다는 더 선명한 디지털 사이니지, 밋밋한 사진보다는 화려하게 움직이거나 시선을 강탈하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들어가 있으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최근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들 것 떠올려보면 쉽다. “이미지의 생생한 정도, 색상의 강렬함, 움직임, 재생 빈도, 현실성 등의 모든 것이 반응을 자극할 것입니다.” 멘네케의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진을 넣는다면 전체적으로 싸구려 음식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급 정찬 식당에서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메뉴에 사진을 넣는 것을 꺼린다.

 

3. 교묘한 가격 노출 방법

손님이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부추기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가격표가 보이지 않도록 배치해야 한다. “우리는 $ 단위를 아예 없애버립니다. 왜냐면 그 기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우니까요. 돈을 나타내는 표기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앨런의 말이다.
‘$12.00 Club Sandwich’ 라고 쓰인 것보다 ‘12.00 Club Sandwich’라고 쓰인 것이 더 좋고, 그보다 ‘12 Club Sandwich’라고 쓰인 것이 더 좋다. 코넬 대학교에서는 심지어 숫자도 사용하지 않고 글자로 가격을 써넣은 것(twelve dollars)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격 기재 방식은 음식점의 말투입니다. $9.95라고 적혀진 것이 $10이라고 적힌 것보다 훨씬 친근해 보입니다. 또, 그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과 태도가 묻어납니다.” 랩의 말이다.

메뉴 디자인에서 메뉴 이름과 가격을 점선으로 이어놓는 것은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이다. “메뉴와 가격을 이어놓는 것은 메뉴판을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지만, 결과적으로는 손님에게 가격을 계속해서 상기시키도록 유도합니다. 음식 이름을 하나씩 읽으면서 빠짐없이 가격을 따라 읽도록 만들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메뉴판을 주게 되면 낮은 가격의 메뉴만 팔리게 될 겁니다.” 앨런의 말이다.
해결책? 가격을 메뉴 속에 포함하는 방법이 있다. 가격을 따로 부각하지 않고 메뉴 이름 아래에 음식 설명에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다. 음식 설명과 같은 글씨체, 같은 크기, 같은 색상으로 그냥 훑어 읽고 지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4. 비싼 메뉴 미끼 만들기 (합리적인 가격이 좋은 가격은 아니다)

메뉴를 디자인하는 데에는 ‘관점’이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뉴 가장 상위에 믿기 힘들 정도로 비싼 가격의 음식을 하나 올려놓는 것은 유용한 속임수다. 이로 인해 다른 모든 메뉴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보이도록 관점이 통째로 바뀐다.
웨이터는 어차피 30만 원이 넘는 랍스터를 시킬 것이라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7만 원짜리 스테이크는 이제 좀 싸게 들린다. 그렇지 않나?
다른 메뉴보다 약간씩 비싼 메뉴를 놓아두는 것으로 음식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높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실제로 주문하길 바라는 음식의 가격을 섬세히 설정해야 한다. 손님이 낼 수 있는 범위와 도저히 낼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범위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이런 섬세한 가격구조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손님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데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서 밝힌 결과, 8천 원짜리 뷔페가 4천 원짜리 뷔페보다 만족도 조사가 높게 나온 사례를 들 수 있다. 두 음식은 완전히 같았는데도 말이다.

 

5. 고객의 눈을 이해하기

슈퍼마켓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상품을 눈높이에 맞춰 진열하는 것처럼, 메뉴판에서도 가장 수익성이 좋은 메뉴를 눈이 가장 편한 위치에 놓아둔다. 우측 상단 코너 부분은 금싸라기 구역이다. 종이 신문과 인쇄 잡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이 가장 좋은 메뉴를 두는 장소다.

“그러고서 우리는 에피타이저를 좌측 상단에, 그리고 그 아래에는 샐러드를 놓습니다. 이렇게 한다면 모든 메뉴를 술술 흐르듯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랩의 설명이다.
가장 수익성이 높은 메뉴에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주변 여백을 많이 비워두는 속임수를 쓸 수도 있다. 박스를 씌워 넣거나 별도의 옵션으로 구분해서 띄워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색상과 대조되는 반전 색상의 포켓을 만들어 넣는다면 이목을 끌 수 있습니다.” 앨런의 말이다.

 

6. 색상의 활용

다양한 색상을 활용하는 것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과 같다. 색상이 행동 결정에 직접적인 동기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푸른색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색상입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주죠.” 앨런이 말했다.
얼마나 많은 레스토랑이 빨간색과 노란색을 브랜드 컬러로 사용하는지 기억이 나는가? 색상이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보고서에 따르면 붉은 계열의 색상은 식욕을 돋우고 노란색은 우리의 시선을 끈다고 한다. “이 둘이 조합되어 사용된다면 음식과 관련된 최적의 색상 조합이겠죠?” 앨런의 말이다.

 

7. 매혹적인 어휘의 사용

음식에 대한 설명이 더 길어지고 상세할수록 더 많이 팔린다. 거의 30% 가까이 많이 팔 수 있다. 코오넬 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메뉴에 대한 설명을 많이 붙이는 것으로 생산 비용을 높이지 않으면서 손님의 마음에 주는 감동을 높일 수 있다. 손님이 지급한 가격에 대비해서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상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랩이 설명했다.
기존에는 ‘초콜릿 푸딩’이라고 적어놓던 것을 ‘윤기가 매혹적인 초콜릿 푸딩’으로 적을 때 손님들은 실제로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낀다.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대로 맛을 느낍니다.” 랩이 말했다.
와인으로 진행한 한 연구 결과에서도 같은 개념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조사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같은 와인에 다른 라벨을 붙여 맛보게 했다. 한 와인은 캘리포니아California산이라고 표기되었고 다른 와인에는 다코타 북부North Dakota(실제로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이 있긴 한가?)라고 표기했다. 실제로 실험에 사용한 와인은 $1.99짜리 싸구려 와인이었다. 결과가 재미있다.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마셨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은 North Dakota산 와인을 마셨다고 생각한 사람보다 총 12%의 음식을 더 먹었다.

“‘산지 직송’, ‘지역 생산물’, ‘농장에서 직접 기른’과 같은 형용사 문구들은 손님들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설명들이 메뉴의 퀄리티에 대해 지각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앨런이 말했다. 이 장황한 표현들은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미국의 어느 주는 ‘진실된 메뉴 작성법’을 개정해 공표하기도 했다. 식당들이 싸구려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원산지를 속여 파는데 손님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챘기 때문이다.

 

8. 향수를 자극하기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기시키거나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음식이 있다. 레스토랑은 이런 경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서 수익을 내기 위해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과거의 시점을 넌지시 언급하는 것은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가족, 전통, 민족주의적인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의 음식은 전통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어졌음에도 손님은 전통적이라 믿으며 건강한 느낌을 주는 듯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다음엔 ‘할머니가 끓여주신 치킨 스프’를 주문하기 전에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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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Mental Floss의 <8 Psychological Tricks of Restaurant Menus>를 번역,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셰프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 (주방사투리)

A : 어제 어땠어?
B : 말도 마라, 어젠 저녁에만 order 90개 cover했어. 그 중에 두 팀은 12 tops였고, VIP도 네 팀 왔어.
A : 그렇게 많이 왔어?
B : 9시까지는 한가하다가 갑자기 huge pick-up이 시작됐어. 20분 동안 물밀 듯이 주문이 들어오는데 스트라이퍼랑 타르틴은 순식간에 86’d 됐어. 우리 식당의 soigne한 메뉴 샹트렐 리조또를 네 개나 a la minute으로 만들어냈어.
A : 주방에 사람은 충분하고?
B : sauté 파트에 여자 green cook 하나가 들어왔는데, 걔한테 테이블 오더 3개가 한번에 들어갔어. 4접시, 4접시, 3접시를 차례로 빼라고 밀어붙였어. 그러고 나서도 6접시를 더 만들어야 하더라고. 다 만들고 나니까 이거 웬걸? 2개가 모자라더라고. 그럼 어떻게 돼? Dying on the pass 되잖아.
A : 그래서?
B : 어떻게 다 쳐내긴 했는데, 그래도 오더가 계속 들어오는 거야 Dupe 따라가느라 완전 쩔어 있는데 Salamander도 고장 났고, 어제는 porter애들도 안 나왔지, 아무튼 어제는 진짜 망하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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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레스토랑에서 일해보지 못했다면 위의 대화는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단순히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겠지만, 주방에서도 그들만이 사용하는 용어가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는 기발하고 실용적이지만 가끔은 입에 담기 힘든 표현도 많이 있다. 주방마다 그들끼리의 은어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이제 막 요리에 입문한 사람에겐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은 영어권 주방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주방 사투리(Kitchen Slang)를 풀이해본다.

 

ON THE LINE
주방에서 “line”이란 재료를 요리하는 공간 혹은 가스버너가 길게 줄지어 있는 곳을 가리킨다. 당신이 “On The Line”이라면 “Line Cook”으로서 한 파트의 맡았다는 것이고, 이는 군대에서의 보병과 같은 존재로 큰 책임이 따른다.

RUNNING THE PASS
“pass”란 플레이팅을 마친 접시가 웨이터에게 전달되는 평평한 공간을 뜻한다. 주방장 혹은 경험이 많은 요리사가 “Run The Pass”를 맡으면 그들은 Pass 앞에 서서 그 날 나가는 모든 음식의 최종 모습과 품질을 점검한다. 이 책임자는 주방으로 전달되는 주문을 챙겨 받아 요리사들에게 만들 순서, 나가야 할 순서를 정해준다. 주방 안을 지휘함과 동시에 전체 코스 요리를 먹는 손님들을 살피며 식사 리듬을 조절하는 역할도 맡는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내어 놓는 pass의 모습

5 OUT
한 번에 들어온 주문을 동시에 마무리해서 내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또 어렵다. 많은 요리사가 각기 다른 음식을 요리할뿐더러, 각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시간, 플레이팅에 필요한 시간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요리사를 협력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out’이란 각 요리의 완료 시간을 정해 주는 표현이다. 주방장이 “5 out” 혹은 “3 out on sirloin”이라고 한다면 요리사들은 그 시간 안에 자신이 맡은 요리를 완성해내야 한다. 늦게 내어놓는 것도 안되며 일찍 내어놓는 것도 당연히 안 될 일이다.

SOIGNE
“Soigne”는 프랑스 말이다. 사전적인 뜻은 ‘정성 들인’, ‘공들인’ 이라는 뜻이고 ‘고상한’, ‘우아한’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파인다이닝 허세남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는 감탄사다. 이례적일 정도로 섹시한 음식이 만들어지거나 플레이팅을 완벽히 마무리했을 때 이 표현을 외칠 수 있다.

A LA MINUTE
“A la minute”또한 프랑스 말이다. 영어로는 “In the minute”로 바꿔 쓸 수 있다. 주문이 자주 들어오는 음식들은 쉽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대량으로 준비를 해두곤 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수량에 맞춰서 간단히 데워서 내보내는 등 조리법을 간소화시켜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A la minute”은 이런 사전 준비 없이 주문이 들어온 후에야 모든 조리 단계를 정석적으로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MISE
“mise en place”의 준말이다. 이 말 또한 프랑스 말이다. 영어로는 “everything in its place.” 모든 것을 제 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뜻이다. 물밀듯이 주문이 들어와도 동시에 일을 쳐 낼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각 섹션마다 정해진 자리에 준비해 놓는 것을 뜻한다.

으흠… 미쟝이 아주 잘 되었군. 이제 손님만 있으면 되겠다.

12-TOP/4-TOP/DEUCE
“12 Top”은 한 테이블에 12명의 단체 손님이 앉는 것을 말한다. 4명이 한 테이블에 앉은 것은 “4 Top”이라 부르고, 2명이 한 테이블에 앉으면 “deuce”라고 부른다.

NO SHOW
“no-show”는 주방에 일하는 직원이 무단결근 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예약 손님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도 쓰인다. 양쪽 모두 주방장에겐 용납할 수 없는 암적 존재들이다.

ON DECK / ON ORDER
프린터기에 주문서가 출력되어 나올 때, ‘Pass’를 담당한 주방장이 요리사에게 주문내용을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말한다. “4 Steak, 2 Quail, 1 Blue, on order.”라고 주문서를 읽으면 각 파트를 맡은 요리사들은 “Yes, Chef”라는 우렁찬 대답과 함께 자신이 맡은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 정신 무장을 하게 된다.

FIRE
주방장이 “fire” 또는 “pick-up”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다른 일을 제쳐놓고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order fire”란 무엇보다 우선으로 조리하라는 뜻인데, 한 코스의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 식사하는 사람들의 흐름을 파악해 먼저 요리를 내보내야 할 경우 자주 쓰인다. 간혹 주문이 꼬이는 경우에 주문서를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RUN THE DISH
플레이팅이 끝난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보내라는 뜻이다. 요리사들은 서버들에게 음식을 가져가라며 “run the dish”라 말한다. 반대로 서버들은 음식을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을 때 “Can you run?”이라고 묻는다.

DYING ON THE PASS
뜨겁게 나가야 할 음식인데 Pass 위에 올려진 채로 식어가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웨이터들이 너무 바쁘거나 혹은 게을러서 음식을 제때 가져가지 않으면 온도가 내려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공들여 만든 음식이 더 이상 ‘Soigne’하지 않게 된다.

86’D
주방의 음식재료가 떨어졌을 경우 “86’d”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날 준비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주방장이 임의로 몇 가지 메뉴를 “86’d”시킬 수도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 있다면 “86’d”시켜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이 표현은 금주령이 있던 시대, 맨하탄 시내에 있었던 Chumley’s Bar에서 유래되었다. Chumley’s Bar의 출입구는 파멜라 법정을 향해 있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비밀 출구도 있었다. 이 비밀 출구가 ‘베드포드 86번가’로 이어져 있었다. 경찰들도 이따금 이 바에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검문 일정이 잡히면 단골 경찰들이 몰래 바텐더들에게 주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소식을 받은 바텐더들은 손님들을 86번가로 향한 뒷문으로 긴급히 내보냈는데, 이 긴급 퇴출 상황이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져 쓰이고 있다.

WEEDED/IN THE SHIT/IN THE WEEDS
“weed”는 대마초를 뜻하는 은어다. 요리사들이 미칠 듯이 바쁠 때, ‘약 빨고 요리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밀려드는 주문서에 파묻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요리할 때 쓰인다.

THE RAIL/THE BOARD
주문서를 쉽게 탈부착할 수 있는 긴 레일이다. “Clearing the board”라는 표현은 수많은 주문서를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CHECK YOUR PLATES
손님들을 내다볼 수 있는 오픈 키친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미남 혹은 미녀가 식사하러 들어왔다는 신호로 “이번에 나가는 음식은 특별히 신경 쓰자”라고 돌려 말한다. 간혹 “Ace!”라고 말하기도 하고 “Yellowtail!”라고 말하기도 한다.

VIP/PPX/NPR
“Very Important Person,” “Persone Txtrodinaire,” 그리고 “Nice People Get Rewarded”의 줄임말이다.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경우, 극진히 접대해야 한다는 그들만의 은어다. 업계 사람이거나, 연예인, 친구 혹은 가족들에게 서비스가 나가야 할 때 주문서에 기록해 전달된다.

“이 손님은 특별히 신경쓰라구.”

THE SALAMANDER / ROBOCOP / SIZZLE / COMBI
주방 기구들 또한 줄임말로 불리거나 각각의 별명을 갖고 있다. 버너가 상단에 부착된 그릴(broiler)은 “salamander(도롱뇽)”으로 불리고, 믹서기는 “Robocop”으로 불린다. 뜨겁게 데워 나가는 철판접시는 “sizzle(지글거리는 소리)”, 다양한 기능을 갖춘 콤비네이션 오븐은 “combi”로 줄여 부른다. 생선을 구울 때 사용하는 납작한 뒤집개는 “fishpat”, 뜰채는 “spider(거미)”, 고깔 모양으로 생긴 체는 “chinacap(중국인모자)”로 부른다. “low-boy”는 허리 높이로 낮은 냉장고를 뜻한다.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 정도만..

CUPCAKING
바텐더가 특정 손님 앞에서 관심을 끌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SHORT
접시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쓰는 표현이다.

FLASH
고기가 약간 덜 익었을 경우 오븐에 1~2분간 넣어다 빼서 적절한 익힘 상태로 맞추는 것을 말한다.

SANCHO
멕시코에 짓궂은 농담이 있다. 사내가 일하느라 밖에 나와 있는 동안 “Sancho”라는 정력가가 돌아다니며 홀로 남겨진 부인이나 남자친구(?)와 놀아난다는 낭설이다.
주방에서 요리사가 재채기하면 동료들이 “Sancho”라고 외친다. 어이없고 유치한 농담이지만 당황하지 않고 “No mames guey!(지랄 마!)” 라고 답해주면 된다.

DUPE
“duplicate(이중의, 복사된)”의 줄임말이다. 프린터가 여러 개 있는 주방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코스 주문이 들어올 때 2가지 혹은 3가지 색상으로 구분되어 주문서가 출력되는 곳도 있다. 이때 “pass”에서 일하는 주방장이 지시를 내리면, 다른 요리사가 복사된 주문서에 똑같이 따라서 체크한다.

BUKKAKE
요거트 흩날리기, 크림을 짜서 올리기 혹은 생크림을 뿌리는 테크닉을 부카케라 부른다. “ぶっかけ(부카케)”는 일본어다. 왜 하필이면 흰색 계열의 액체를 뿌리는 데에만 이 표현이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1/8 PAN, 1/6 PAN, 1/3 PAN, HOTEL
‘호텔 팬’은 깊이가 한 뼘 정도 되고 겹겹이 쌓을 수도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를 찌거나 채소를 운반할 때, 각종 재료를 구울 때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각기 팬은 사이즈가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앞의 숫자들은 이 철제 팬의 표준화된 사이즈를 나타낸다.

BEHIND/ATRAS
비좁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요리사들은 자칫 사고의 위험이 크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요리사의 옆이나 뒤를 지나갈 때 “Behind!”라고 외쳐주는 매너가 필요하다. 칼을 들고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고 지나갈 때 특히 자주 쓰인다. “Atrás “는 스페인어로 ‘뒤’를 뜻하며 뜨거운 물체를 옮길 때는 “Hot behind”라고 외친다.

CHARPY
주방에서는 용기마다 어떤 재료가 담겨 있는지 표기할 일이 많다. 그래서 항상 필요한 게 유성 마커펜이다. 본래는 “Sharpie”가 맞으나 멕시코 요리사 특유의 억센 발음을 흉내 내듯이 불리고 있다.

LEFT-HANDED SPATULA / BACON STRETCHER / LONG STAND / GRILL EXTENDER
왼손잡이용 주걱, 베이컨 운반대, 그릴 확장기구…
세상에 이따위 물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 갓 주방에 들어온 신입에게 이것들을 찾아오라고 시켜보자. 있지도 않은 물건을 찾느라 진땀 빼는 모습이 배꼽 빠지게 웃기다.

GETTING A PUSH
서비스 시간이 되면, 주문이 균일하게 들어오질 않는다. 한가하다가도 이따금 물밀 듯이 주문이 들어오는데, 주문서 출력 빈도가 점점 빨라지고 바빠져 가는 순간을 “getting a push”라 부른다.

TRIAL/STAGE
“trial”이란 주방장과의 대면 면접까지 통과한 지원자가 실제로 주방에서 일하며 실무 면접을 받는 것을 뜻한다. 불 앞에 서서까지 일을 제대로 해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stage”란 조금 더 오랫동안 무급으로 일하며 주방의 일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보통 몇 주, 길게는 두 달 정도를 일한다.

CROP DUSTING
“crop dusting”은 농약 살포를 뜻하는데 주방에서는 ‘방귀 살포’를 뜻한다. 고의로 나온 것이든 본의 아니게 사고로 나온 것이든 비위생적인 건 매한가지다.

BURN THE ICE
얼음 기계에 원치 않은 소스가 묻어버렸다면? 또는 깨진 유리조각이 들어가버렸다면? 뜨거운 물을 끼얹으면 된다. 얼음과 함께 있던 이물질을 씻어 내거나, 얼음 기계를 완전히 청소할 때 “얼음을 태워버린다.”라고 표현한다.

SOS
‘Sauce On the Side’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즉, 소스를 사이드로 달라는 소리다. ‘부먹, 찍먹’ 논란은 어디에나 있나보다.

ALL DAY
요리사가 주방장에게 무슨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지 확인할 때 묻는 표현이다. “셰프, 제가 지금 몇 개의 요리를 해야 하나요?”라는 말을 “Can you give me all-day, Chef?”라고 할 수 있다. “넌 지금 링귀니 4개, 스파게티 3개, 카펠레티 2개, 어린이용 파스타 2개 만들어야 해” 라고 확인해줄 것이다.

WAXING A TABLE
테이블을 왁스로 닦으라는 이 표현은 VIP에게 극진한 응대를 하라는 뜻이다.

 

원저자 Scalett Lindeman은 솔트레이크시티, 로스앤젤레스, 뉴욕에 있는 식당에서 10년간 일했으며 지금은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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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First we feast의 <KITCHEN SLANG 101: HOW TO TALK LIKE A REAL-LIFE LINE COOK>를 번역, 편집했음을 밝힙니다.

르네 레드제피와 지로 오노의 차 한잔 – 두 명의 요리 마스터가 나눈 ‘요리, 헌신, 전념’에 대한 대화  

두 명의 요리 마스터가 요리에 대한 헌신과 전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MADfeed에 새로운 비디오가 올라왔다.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와 스시 마스터 지로 오노가 만나 대화를 나누는 12분의 영상이다. 이 영상은 요리사뿐만 아니라, 한 분야에 매진해서 수련을 거듭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큰 귀감이 될 영상이다.

지로 오노는 아직도 나무 주판을 활용해 가격을 계산하고 있다. 전통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손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의 중요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기계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이 손으로 해야 할 일을 예전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의 진보는 사람의 손을 통해 이뤄졌다.”

영상에서는 두 사람의 인터뷰와 르네의 식사 장면, 나레이션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르네는 일본 초밥 장인의 고집과 외길인생 철학에 적잖은 감명을 받은 듯하다. “휴가를 가느니 차라리 일을 하고 말지, 휴가를 가면 하루도 안되어서 지루해질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당혹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서양인에겐 ‘장인정신’이라 하는 것은 너무나 낯선 삶의 방식인 이유에서였을까.

“장인(master)이 되었다고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르네의 질문에 지로는 “50세”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서 “마스터는 기존의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장인의 정의를 덧붙였다. 지로의 아들 또한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는데 주방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장인과 기능공의 관계로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을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로의 아들은 “예전에는 그저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밖에 여기지 못했다. 인제야 이 사람이 정말 궁극의 경지에 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 매일 수련하지만, 그 수준에 도달했을 때에는 아버지는 또 저 멀리 가버린다” 라고 옆에서 거든다. 올해 나이 90세인 지로 오노는 아직도 매일 하루를 도전과 발전을 위한 날로 받아들인다.

일본 전통 초밥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초밥을 만들려면 20년을 배워야 한다는 정설이 있다. 이런 장인정신은 요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보편적인 직업윤리로 꼽힌다. 일본을 경제대국과 기술대국으로 번영케 한 고유한 민족성을 꼽으라면 바로 장인정신일 것이다.

일본에는 창업한 지 백 년이 넘는 가게가 즐비하다. 몇 대째 가업을 이어서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본의 제조품은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장인정신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장인(master)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다른 직업으로 옮기지도 않는다. 직장을 자아실현이나 수행의 장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해야만 한다. 일을 시작했다면 좋든 싫든 계속 전진해서 나갈 수 밖에 없다. 일이 나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고민하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될 수 없다.” 지로 오노는 젊은 세대들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평정심을 잃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감으로 궁극의 경지에 달한 장인, 지로 오노.
모두가 외면하는 길을 혼자 걸어감으로 세계 미식의 판도를 뒤엎은 르네 레드제피.

이 둘은 나이도, 요리분야도, 문화권도 다르지만,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려는 집착과 헌신, 그리고 전념은 공통점이 아닐까. 이 장인정신은 비단 요리에서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인이 갖춰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고집스러운 두 사람의 인터뷰 영상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김훈이] 의사에서 요리사로, 전직을 결심하고 학교를 선택하다.

뉴욕에 된장 냄새가 진하게 퍼지고 있다. 냄새의 근원지는 한식당 최초의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 ‘단지’, 김훈이가 오너셰프로 있는 곳이다. 그는 2014년도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3의 심사위원으로 초대되며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김훈이는 본디 한식을 전공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요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수학과 과학 성적이 좋아 명문대를 진학했고, 의사의 길을 순탄히 걷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요리를 처음 시작한 것은 31살이 되었을 때였다. ICC-International Culinary Center 9개월 단기간 코스로 급하게 시작했다. (당시는 FCI-French Culinary Institute로 불렸다) 당시 학교에 입학한 연도가 2004년이었으니 요리를 시작한 지 7년 만에 미슐랭 스타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요리사가 된 것이다. 그것도 미식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에서 쟁쟁한 식당들과의 경쟁을 이겨낸 쾌거이니 그 의미는 남다르다.

이런 김훈이는 현직 요리사뿐만 아니라, 요리를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앞으로 요리사로 전직을 꿈꾸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두말 할 것 없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셰프뉴스팀은 김훈이 셰프에게 화상통화를 요청했고, 기존에 대중매체에서는 깊이 있게 물어보지 않았던 ‘요리사로서의 김훈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요리사로 전업하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고민을 가감 없이 답해주었다.

| 의사에서 요리사로, 진로를 변경한 이유가 있었나요?

아마 용기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에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가 아닌 다른 걸 찾기 시작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이랑 과학을 잘했어요. 과학고를 졸업해 UC버클리를 나왔거든요. 그러면서도 대학교 시절에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의사도 어머님이 해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듣고 선택한 길이었고, 그렇게 10년 동안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만 했어요. 코네티컷 의과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후에 1년을 휴학했어요. 일단 진학하게 되면 6년 동안 쉬지 않고 내리 다녀야 했으니까……
1년을 쉬는 동안 “요리나 배워 볼까”라는 생각에 9개월짜리 코스를 다녔어요. 9개월 코스 다니고 나니까 3개월이 남잖아요? 그동안 Daniel에서 일하다가 정식 채용되면서 의사의 길을 포기했죠.

 

| 의사를 포기한 이유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리를 선택하셨나요?

저는 진로를 선택할 때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만으로 의사를 선택했어요. 학부 시절에 병원을 다닐 때는 분명 사람을 도와준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대학원 시절에 병원을 다니게 되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보다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을 더 많이 겪게 되더라고요. 불치병 환자라든지, 큰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만 봐야 하는 사람이라든지….

식당을 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매일 매일 짧은 시간에 노력을 다해서 바로 바로 성과를 확인하는 일에 희열을 느끼고 있어요.

 

| 요리를 시작한 이후에 개인적인 변화가 생겼다면?

달라진 점은 무엇보다 잠을 잘 자요. 요리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온종일 육체노동을 해도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기분이 좋아요. 사실 병원에서 퇴근할 때에도 기분이 좋긴 한데, 그건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일로부터 해방되니까 기분이 좋은, 약간 다른 거잖아요? 요리를 시작한 이후에는 눕자마자 5분 만에 잠들어요. (웃음)

| 학교를 고를 때 기준이 있었나요?

주방에서만 사용하는 프랑스 표현들이 있어요. 그런 표현들을 알면 요리사들 사이에서 대화가 편해져요. 프랑스어로 ‘소테(sauté)’라고 말하면 다 알아들을 걸 다른 나라말로 하면 ‘기름을 조금만 부어서 센 불로 짧은 시간에 골고루 볶아내는 것’이라고 길게 설명해야 해요. 그리고 프랑스 요리 교육이 기술적인 것을 가르쳐주는 것 같지만 결국 재료에 대해 공부하게 돼요. 어떤 날은 감자 요리를 4~5가지 가르쳐주고 다음 날은 달걀로 몇 가지를 하는 식이에요. 한 재료에서 얼마나 다양한 요리가 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죠. 재료를 이해해야 다른 계열의 요리를 더 쉽게 할 수 있어요. 한식도 마찬가지예요.

 

| 전직을 하던 시점,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모교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만약 내가 ICC를 안 다녔다면 과연 시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식당에서 일하는 것의 차이가 너무 커요. 그래서 아무리 좋은 학교를 졸업했어도 일을 시작할 때에는 배웠던 것을 다 잊고 일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해요. 학교에 다녔다는 것은 ‘칼은 제대로 잡을 줄 안다.’ 정도의 수준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인증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9개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까 학교에서 인턴십을 꼭 하라고 당부했고, 몇 군데의 인턴십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다니엘(Daniel)에서도 인턴십을 할 수 있었고 2주 동안 일하고 나니까 정식멤버가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오더라고요.

2005.11~2007.11 다니엘 주방에서, 우측에서 두 번째가 김훈이 셰프다.
2005.11~2007.11 다니엘 주방에서, 우측에서 두 번째가 김훈이 셰프다.

| 정말 좋은 제안이 들어왔었네요. 다니엘의 정규직과 오랜 준비를 해 온 의사의 길,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고민은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굉장한 식당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확실한 건, 그 식당에는 매일같이 10명 정도의 지원자가 걸어 들어와서 이력서를 내고 갔다는 거에요. 그 이력서들만 보더라도 10년의 요리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무급인턴이었거든요. 10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다니엘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는 걸 들었어요.

이전까지는 내가 아무리 요리를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오랜 시간 공부해온 걸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의학을 그만두는 게 좀 더 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 않았어요. 다니엘의 제안을 거절하는 게 더 아까웠던 거죠.

 

| ICC는 휴학기간에 취미 삼아 다니기엔 비싼 학교가 아닌가요?

알고 계신 것처럼 ICC는 비싸요. 학교 중에서 제일 비쌀 거에요. 9개월 코스에 한국 돈 4천만 원이 넘게 드니까. 근데 CIA는 2년을 다녀야 돼요. 학비만 따지면 7천만 원이에요. 거기에 생활비까지 따지면 훨씬 더 들어가죠. 다른 요리학교는 4년짜리라서 졸업할 때까지 학비만 1억 6천만 원이 들어요. 저는 시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고 단기간에 집중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ICC를 선택한 거죠. 저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게다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잖아요? 이게 요리사에게 엄청난 메리트가 되거든요.

 

| 뉴욕 맨해튼은 요리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요?

맨해튼은 음식의 수도(Food Capital) 또는 식당의 수도(Restaurant Capital)라고 불려요. 10년 전부터 세계의 유명한 셰프들이 뉴욕에 다 모여들었어요. 그래서 경쟁도 심한데, 조엘 로부숑도 오픈했다가 얼마 전에 문 닫았고요, 알랭 듀카스도 왔다가 문 닫았어요. 뉴욕에서 식당을 성공시킨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이런 곳에서 요리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죠.

좋은 식당에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리사로서 먹으러 다니는 것도 진짜 중요해요. 이건 투자에요. 맛이 없는 걸 먹어도 좋은 경험이 되는 거에요. 많이 먹어봐야 왜 맛이 있고 왜 맛이 없는지를 알아요. 저는 4살 때 한국에서 먹었던 맛을 잊고 있다가 30살에 요리를 시작하면서 그 기억이 떠올랐어요. 26년을 머릿속에 숨어 있던 게 나오더라니까요?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끊임없이 먹어야 해요.

 

| 요리유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충고가 있나요?

솔직히 대답해서 돈이 없으면 학교는 갈 필요 없어요. 제 주변의 요리사를 봐도 학교에 다닌 사람은 1/4밖에 안돼요. 진짜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요리학교를 안 나온 사람들도 많아요. 요리학교에서 공부해서 졸업한 사람이랑, 좋은 식당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설거지부터 시작한 사람이랑 결국 똑같아요. 돈이 없다고 요리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ICC는 아무런 요리지식도 없고 인맥도 없는 저에게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확실히 요리사로서 시작하거나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죠. 제가 ICC에서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거에요.

 

| 본인이 졸업한 학교에서 수업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육에 뜻이 있으십니까?

올해부터 ICC에서 한식코스를 열었어요. 정규 과정은 아니에요.

제가 배울 때는 제 위에 있던 셰프들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던져줬어요. 여러 주방을 경험하고 여러 셰프를 만나면서 받은 다음에 나한테 맞는 것, 쓸 수 있는 것을 다시 뽑아내는 거에요. 그리고 저는 제 거를 다시 밑으로 전해줘야 해요. 식당에서 배우고 배운 걸 발전시키고 다시 물려줘야 요리 전체가 발전될 수 있어요. 저도 4명의 셰프에게 받은 것들을 더 좋은 것으로 물려주려는 과정에서 발전하고 있는 거고요.

제 식당에서는 레시피를 다 공개해요. 하루 도와주러 온 사람도 다 볼 수 있어요.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이메일로 다 보여줘요. 기사가 나가면 레시피도 같이 나가요. 한국에서는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는 문화가 있는 데, 이건 큰 실수에요. 단지를 처음 열었을 때 만든 은대구 요리가 있는데 지금까지 6번의 변화가 있었어요. 바뀔 때마다 더 맛있게 바꿨죠. 그렇게 계속 바꿔야 요리가 발전돼요. 식당마다 똑같이 예전의 레시피를 가져다 쓰면 그게 맥도날드랑 뭐가 다르겠어요. 성공하는 식당들은 똑같은 요리를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조금씩이라도 바꿔요. 레시피를 지키려고 고집하는 사람은 발전을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어서 [우리가 몰랐던 김훈이 #2] 뉴욕의 한식당 오너셰프, 스타셰프가 아닌 요리사로서의 김훈이를 만나다. 는 보름 후에 연재된다.

 

한국인으로서, 요리사로서 김훈이는 어떤 사람일까?

“외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즐긴 후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궁금하도록 만들어야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가보고 싶도록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돈을 쓰는 건 재료와 직원, 이 둘 뿐입니다. 이 두 개는 못 아껴요. 이게 제 식당의 아이덴티티입니다.”

 

| 단지와 한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 저는 3살부터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방학마다 한국에 갔었는데, 먹어본 음식들이 다 맛있어요. 요리를 시작한 이후에 다시 그 맛을 떠올렸습니다. 내 식당을 열 때는 한국 맛을 살리고 싶었어요. 단지는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고 한잔은 한국 술 문화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인가? 한국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찾아와요.

| 뉴욕에서의 요리 인생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 제가 다니엘에서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송로버섯(트뤼프) 시즌이었어요. 하얀 송로버섯은 굉장히 비싸거든요. 그래서 서빙할 때마다 무게를 잽니다. 주방에서 나갈 때 재고, 손님 테이블에서 얇게 썰어준 다음에 또 재고. 근데 주방에 돌아오는 송로버섯의 모양이 이상했어요. 누가 콱 깨물어 먹은 것처럼. 사과 먹듯이 말이죠. 그래서 “누가 이렇게 했느냐”라고 하니까 서버가 “마사 셰프”라고 하더라고요. 주방에서는 다들 “술 취했나 보다”라며 웃어넘겼죠.
나중에 마사에서 일하게 됐고 그때 왜 그랬었는지 물었어요. 마사 셰프는 “송로버섯은 서양에서나 좋은 식재료다. 진짜 좋은 식재료는 아니다. 그걸 한 번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랬다”라고 했어요. 나름 의미 있는 행동이었죠. 당시에는 좀 웃겼지만.

| 다니엘과 마사에서의 경험들이 지금 요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마사 같은 경우 일단 의자에 앉기만 해도 50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쌉니다. 아마 뉴욕에서 가장 비싼 식당에 속할 거에요. 마사는 일주일에 5일을 일본에서 직배송한 최고급식재료를 씁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퍼세는 토마스 캘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잖아요. 그 레스토랑도 최고급 채소만 사용해요. 이 둘이 위치가 가까워서 서로 식재료를 교환해서 쓰기도 해요. 결국, 이 두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면, 뉴욕에서 제일 좋은 식재료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재료들을 쓰다 보니 재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한번 좋은 재료를 사용하다 보면 수준을 내릴 수가 없어요. 점점 욕심이 커집니다.

| 그렇다면 단지와 한잔의 식재료는 어떻습니까?

– 식당에 지불하는 음식값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죠. 분위기도 좋아야 하고 그릇도 비싼 걸 써야 하고, 공간도 충분히 넓어야 하고, 동네도 좋아야 하죠. 그런데 저는 제일 저렴한 접시를 씁니다. 와인 글라스는 5천 원짜리입니다. 천 냅킨 아니고 종이 냅킨을 씁니다. 동네도 비싼 동네가 아니에요.
제가 돈을 쓰는 건 재료와 직원, 이 둘뿐입니다. 이 두 개는 못 아껴요. 이게 제 식당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제가 두 번째 식당 ‘한잔’을 오픈하고 나서 1주일 안에 다니엘 블뤼, 페란 아드리아, 장 죠지가 다녀갔어요. 다니엘은 제가 그 식당에서 일했으니까 한 번 와봤다고 쳐도, 다른 셰프들이 왔을 때는 저도 놀랐어요. 요리사들에게는 좋은 재료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좋은 재료를 쓴다는 소문이 나면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인정(respect)받을 수 있어요. 어차피 모든 요리사는 뉴욕에 한 번씩은 들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알고 찾아 왔나 봐요.

| 뉴욕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구하나요?

– 5가지 식재료는 반드시 한국에서 가져옵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이 다섯 가지를 반드시 챙기는 이유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음식이 저절로 맛있어지기 때문입니다. 장맛이 좋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단지를 열 때도 한국 음식이 일본 음식이나 프랑스 음식처럼 좋은 재료로 만들면 더 맛있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마늘도 한국산과 최대한 비슷한 것을 써요. 뉴욕의 식당 대부분이 중국산 마늘을 씁니다. 중국산은 처음 4시간 동안은 향이 강한데, 나중에는 향이 없어져요. 우리 음식은 양념에 재우는 게 많잖아요. 김치찌개도 하루 지나면 더 맛있고, 양념 고기도 그렇고. 근데 중국산 마늘을 넣게 되면, 먹기 전에 한 번 더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산과 가장 비슷한 캘리포니아산 마늘을 사용합니다.

| 뉴욕에 있는 다른 한식당들 사정은 어떤가요? 한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던데요.

– 한국 식당들 거의 다 잘되는 것 같아요. 한인타운도 있고, 외국인도 많이 찾고. 미국 사람들은 고기 굽는 식당이 정통 한식당이라고 생각해요. 이 점이 미국인과 잘 맞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2차, 3차 문화가 없습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2~3시간은 기본이에요.
우선 식당 바에서 칵테일 한 잔하고, 테이블에 앉아서는 밥을 먹고, 끝나면 디저트나 위스키를 먹어요. 모든 소셜(Social)활동을 한 식당에서 하는 문화죠. 한국 식당 대부분은 고기를 구우면서 그게 해결되거든요. 이야기하면서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잘 됩니다.
우리 집은 고기를 굽진 않아요. 아마도 ‘한국 장을 어떻게 변형하길래 뉴욕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는 호기심으로 오는 것 같아요.

| 한식을 요리하는 셰프로서 어떨 때 가장 만족하시나요?

– 문화를 알리고 싶은 사람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을 찾아가 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스페인 음식을 먹었다면 ‘스페인에 가서 진짜를 먹어보고 싶다.’ 이렇게 해야죠.
보통 제 주변인들은 한국에서 한식을 경험한 후에 한국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을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 또는 한국에서 음식을 먹고 사람을 알고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되고 한국 사람들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성공이라고 봅니다. 음식이라는 문화가 갖는 장점이죠.

| 한국에서의 생활이 길진 않았는데, 한국을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 누군가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답 못 해요. 내 와이프니까 사랑하고. 내 고향이니까 한국을 사랑한 거죠. 내가 아무리 미국 시민이어도 피가 한국사람이고 생긴 것도 그렇잖아요. 내 아들도 한국에 2주밖에 있지 않았지만, 한국사람이에요.
아마 한국에서 계속 살았으면 오히려 애정이 없었을 수도 있어요. 외국에서 늘 한국 문화를 그러워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 방송 보려면 2달 걸렸어요. 비디오로 나오는 걸 봤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사랑한 것 같아요.

| 요리사로서 성공하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개인적인 성공 목표는 내 식당, ‘단지’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으로서 성공은 장사가 잘되는지 아닌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요리사로서의 성공은 내 요리를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가 중요한 거죠. 요리사로서 자기 요리를 보여주고 돈을 번다는 게 진짜 쉽지 않아요. 자기 식당을 열지 않는 이상 어느 요리사건 자기 위에 누군가가 있게 되어있어요. 그거는 보스의 요리를 하는 거지 내 요리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 후배 요리사들에게 조언 부탁합니다.

-제일 중요한 거는 사고방식. 우리 식당에도 자리 구하러 많이 옵니다. 근데 대부분의 요리사가 자기가 아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내가 이미 배운 것은 여기랑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배우러 왔기에 가르쳐 달라고 해야 하는 거죠. 이런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뽑히고 싶은 급한 마음은 이해해요. 근데 보통 셰프들은 그런 거 잘 안 보거든요. 새로운 식당을 가면 머리를 비우고 배우면 됩니다. 스펀지처럼 말이죠. 사실 배운 것 다 머리에 남아있거든요.
식당마다 학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 다음 스텝의 성공은 무엇일까요. 단지나 한잔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요?

– 다른 식당을 또 오픈해야죠. 단지나 한잔은 콘셉트도 다르고 음식도 달라요. 단지는 5년 전의 내 이미지에요. 5년 전으로 돌아가 같은 식당을 열고 싶지 않아요. 한잔을 오픈한 이후 저도 많이 성장했거든요.
식당을 열 때 자기 자신을 보면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식당이 보여줘야 해요. 그래서 다음 식당을 열면 단지나 한잔이 아닌 그때 모습이 담긴 음식점을 열겁니다.

 

김훈이 셰프. 그에게 요리사라는 직업은 이러하다.

“세상에 요리사처럼 행복한 일은 또 없어요. 손님이 행복해하고 ‘잘 먹고 갑니다’라고 말할 때 그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음식의 정체성은 곧 요리사 자신이다.” ㅍ(PIEUP) 다이닝 이상필 셰프를 만나다.

“제가 프랑스 요리에 된장을 조금 썼다고 해요. 그럼 그게 한식인가요? 프랑스 음식인가요? 사람들은 음식을 규정하려고 해요.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춰 이해하려고 하는 거죠.”

그 요리는 ‘ㅍ(PIEUP)’의 요리라는 설명 이외에는 불가능하다고 이상필 셰프는 말한다. ‘그럼 ㅍ이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물어보면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요리’라며 이미 많은 요리사가 입을 모아 말했던 진부한 모범답안을 내어놓는다.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도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속이 답답해진다. 요리사에게 왜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는 것이 중요한지, 요리사의 독창성이 음식에 그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은 번진다.

그의 요리인생 13년을 듣다 보니, 그가 찾고자 하는 ‘ㅍ(PIEUP)’의 요리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한국 요리사로서 전혀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경력을 가진 그가, 자신만의 요리를 찾아내기 위해 대면했던 세상은 어땠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서툴고 대책 없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또 멀고 험난할지를 걱정하며 이상필 셰프를 소개한다.

 

| 문제아 날라리, 담배 연기 사이로 요리의 길을 보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배우고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던 덩치 큰 불량학생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체격 좋은 학생을 발견한 태권도 선생님은 그를 도장으로 데려가 운동을 가르쳐주며 “내가 시키는 대로 운동하면 점심만 먹고 집에 갈 수 있게 해줄게. 대회 나가서 금메달까지 따오면 학교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 안 나와도 돼.”라는 말로 꼬드겨 운동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배운 운동은 주먹질로 이어졌고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퇴학당하고 만다. 실제로 그 짧은 시간 안에 금메달을 따긴 했으니, 금메달을 따면 학교를 안 나와도 된다는 태권도 선생님의 약속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험하게 다루다 부상으로 이어져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자연스레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교는 그만둘 생각으로 다른 진로를 찾던 참이었다. 어느 날 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태우는 데, 연기 사이로 요리학원 간판이 보였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격증 두 개만 있으면 대학은 간다더라.”

그 길로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요리학원에 등록했으나 난생처음으로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역량의 사람들을 만나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레시피도 안보고 저걸 다 만들지? 나랑 나이도 같은데?” 선천적인 체격의 우월함으로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타인과의 경쟁에서 매번 이겨 왔던 이 청년은 요리도 경쟁시합으로 여겼다. 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요리는 그런 전투적인 마음으로 해선 안 되는 것이라며 주변에서 만류했다. 당신은 요리에 재능이 없으니 일찍 그만두는 게 어떠냐는 진심 어린 충고도 들었다.

요리를 배우던 중, 가세가 기울어 학원비를 내기도 녹록지 않았다. 장롱 속 모셔두었던 금붙이를 내다 팔아 학원비를 충당했고 스무 두 살이 되도록 군대까지 미루며 한 길 요리만 팠다. 전국규모의 요리기능대회에서 수상하며 인정받을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만족감이 들었던 시절도 잠시,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이 새로운 요리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 책은 자연을 접시에 그대로 담아내는 요리사 미셸 브라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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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접시를 자신보다 더 아낀다는 미셸 브라의 저서 ‘Essential Cuisine’

“그 전에 배웠던 요리는 하는 법은 똑같이 정해져 있었어요. 고기는 가운데에, 가니쉬는 뒤에, 소스를 앞쪽으로 보기 좋게 흘러내리도록… 한 순간에 이런 스탠다드들이 다 깨져 버렸어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아니 본인도 본 적이 없는 책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 달갑지 않았다. 그 책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 질문만 많아지고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으니 선생님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가르치는 것이나 똑바로 하라는 호통과 함께 그 책은 물이 흥건한 주방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원래대로의 코스를 밟았다면 호텔에서 충분한 월급을 받으면서 서른에 대리를 달고 마흔에 과장을 달았겠죠. 대학교로 가서 석, 박사 코스를 밟았다면 교수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겠죠.”

세계 무대로 진출할 꿈이 생긴 젊은 요리지망생에게 이제껏 해왔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 작게만 보였다. 속으로는 자신의 큰 야망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언젠가 앞지를 것이라는 독한 마음을 품고 주변에서 뭐라 하든 상관치 않은 채 자신만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든 살이 되어서도 젊은 요리사들과 경합해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죽기 직전의 모습까지 다 그려놓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 “저는 10년 전의 호날두입니다. 당신은 퍼거슨입니다. 저를 영입하시겠습니까? ”

2006년, 허허벌판 사막 위에 도시를 짓겠다며 전 세계의 자본이 중동으로 투자되던 시점이었기에 호텔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도 급격히 늘었다. 중동의 한 호텔에서 한국인 요리사를 8명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고, 한국인 요리사 50명이 단체로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한국인 요리사 50명은 면접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는 중이다. 하나같이 정장을 빼어 입었는데 마지막 번호를 받은 지원자는 급하게 온 것을 티라도 내려는 것인지 혼자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서야 선배의 추천을 받아 잠시 외출 나온 것이라고 변명한다.

모든 지원자에게 간단한 질문과 대답이 오간 후에 이 마지막 번호를 받은 지원자에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청년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다. 기본 조건인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대답은커녕 질문도 이해하지 못해 기회가 물 건너가는 듯했다. 이 청년은 대답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어요?” 외치며 한 층을 떠들썩하게 돌아다닌 후 급조한 통역관을 통해 다짜고짜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저는 10년 전의 호날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퍼거슨입니다. 지금 저를 사면 싸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뒤에? 아무도 나를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할걸?”

그렇게 이상필 셰프가 처음 해외로 떠난 곳이 중동 카타르의 리츠칼튼 호텔이다. 배짱 좋게 뱉은 말과 강렬한 눈빛으로 면접관을 사로잡아 해외의 주방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생각만큼 만만하진 않았다.

타지에서는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었다. 견습생이란 언제나 불려다니기에 바쁜 인력이어서, 담배를 필 짬이 잠시라도 생기면 밀렸던 담배와 앞으로 못 피게 될 것까지 감안해 3~4까치를 줄줄이 태웠다. 그의 승부욕은 화를 불렀다. 견습생 사이에서 지기 싫어하는 독한 녀석으로 인식이 굳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을 했지만, 숙소에 돌아오면 외로움에 못 이겨 혼자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참으면서 지내다 보면 어느새 휴일이 찾아오고, 그러다 한, 두 달씩 시간이 흐르고 있는 걸 깨닫는 거죠. 어차피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배우는 것이라도 제대로 배워가자는 마음에 노트를 사서 채워 넣기 시작했어요.”

중동 카타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상필 셰프
중동 카타르 리츠칼튼 호텔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상필 셰프

그런데도 밀려 들어오는 주문을 빼내는 데에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말로 이해가 안되면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했다. 모든 메뉴를 그려넣고 아이디어 스케치와 레시피를 뒤죽박죽 섞으며 노트를 채워나갔다. 요리사는 기본기가 충실해야 한다는 정석적인 배움을 받아들이고 수련의 시간으로 여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프랑스 주방으로 들어가 굳은 일을 뺏어 맡으며 프랑스 요리의 기본기도 수련했다.

 

| 멘토이자 인생 동반자로 세계적인 셰프 상훈 뒤샹브르를 지목하다.

그가 ‘ㅍ’PIEUP(피읖) 이라는 특이한 아이콘을 가지게 된 데에는 상훈 뒤샹브르(Sang hoon deguimbre)의 영향이 컸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셰프로 꼽는 상훈 뒤샹브르는 한국인이지만 벨기에에서 자랐고 레르 뒤 땅(L’air Du Temps)의 셰프이다. 둘의 첫 만남은 2011년이었다. 서울고메의 연사자로 초청받은 상훈 뒤샹브르가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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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뒤샹브르 셰프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나 5살에 벨기에로 입양되어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었다. 미슐랭 별 둘을 받은 식당(L ‘Air du Temps)을 운영한다.

이상필 셰프는 오래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고집이 분명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의 요리를 꿋꿋이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요리에 자신의 고집을 부릴 수 있다니, 새로운 관점이었다. 동질감을 느꼈고 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깟게 뭔데 세계적인 요리사와 동질감이 드네 마네야? 그 사람은 너를 알지도 못하잖아.”

동료의 비아냥거림을 한 귀로 흘려 듣고 주방에 사정해서 조퇴한 후 행사장을 찾았다. 운 좋게도 5분의 시간을 얻어 한 잔의 커피를 대접할 수 있었다. 요리사진과 포트폴리오가 들어있는 USB와 이력서를 건넸다. 짧은 시간 동안 친절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었어요. 선망하던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영상으로 본 그 사람이 내가 그리던 사람이 맞는지, 5분 동안 받은 느낌이 사실과 다름없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근무하던 호텔주방으로 돌아와 대책없이 사표를 던졌다. 상훈 뒤샹브르 셰프는 아무런 답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사표를 던져버렸다. 뒤늦게 답장이 돌아왔다.

“비자는 못 내준다. 여행자 보험을 들려면 네가 알아서 내라. 법적으로 따지면 무허가노동이니 돈도 줄 수 없다. 대신 레스토랑 위에 있는 작은 방은 내어 줄 수 있다. 정 오고 싶으면 와라.”

무턱대고 다시 올라탄 두 번째 외국행 비행기,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낯선 땅에 발을 디뎠고 공항에는 상훈 셰프가 마중 나와 있었다. 단 5분간의 만남이 전부였던 견습생을 배웅하기 위해 세계적인 셰프가 마중을 나오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따뜻한 포옹 뒤에 헤드셰프가 핸들을 잡은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시내로 향했다. 한 시간쯤 지나 도착한 곳은 숙소가 아닌 주방이었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겠다고 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뜸 앞치마와 칼 한 자루를 던져 주는 게 아닌가. 이내 레시피가 적힌 종이도 던져졌다. “30분” 별다른 설명도 없이 미션은 시작되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배웅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 쓸만한 녀석인지 아닌지 시험하기 위해 데려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시험에서 자신이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3개월 동안 레르 뒤 땅에서 일할 수 있었죠. 그저 동질감을 느끼고 선망하던 셰프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자신의 색을 찾기 위해 떠난 여정은 쉽지 않았다. 요리학원 선생님이 자신이 가장 아끼던 책이 내던졌을 때부터 타지의 고향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견습생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밤낮으로 경쟁할 때까지 쉽지 않았다.

“저는 쭉 왕따였어요. 카타르에서 일할 때에도 동양인인데다 영어도 잘 못했기 때문에 주방에서 일만 죽어라 했었는데 여기서도 팀원들과 친해질 겨를은 없었어요. 배우러 왔는데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이 훌쩍 가잖아요?”

경쟁심에 긴장감이 맴돌던 팀원들과 함께 친해질 수 있었더 계기는 풋살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을 때였다. 처음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환호했다. 인간적인 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던 주방에서 느끼지 못했던 희열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타인의 체온, 그 때 머리 속에 들었던 생각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오늘 오후에 장사 진짜 즐겁게 할 수 있겠구나.”

벨기에 레르 뒤 땅 근무시절의 이상필 셰프와 그의 멘토 상훈 뒤샹브르
벨기에 레르 뒤 땅 근무시절의 이상필 셰프와 그의 멘토 상훈 뒤샹브르

벨기에의 3개월 체류 기간 무임금 스타지 생활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그는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돈을 챙겨주지 못했으니 책이라도 한 권 준다며 상훈 뒤샹브르 셰프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책 2권 중 한 권을 이상필 셰프에게 선물했다. 셰프에게 직접 책을 선물 받은 사람은 아마 자신이 처음일 것이라며 뿌듯해 한다.

그리고 셰프에게 CDP(Chef De Party)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는 추천서를 받았다. 이후 자신의 요리를 찾기 위해 한국의 호텔과 레스토랑, 싱가포르의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과 잔(Jaan)을 거쳐 여정을 계속 이었다. 32살까지 배움을 목적으로 스타지 여행을 계속하려고 했으나 자금 부족의 이유로 한국에 돌아온 때가 올해 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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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 요리 색을 찾다. ㅍ(PIEUP) 다이닝의 시작

이상필 셰프는 자신만의 요리를 설명할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해 ‘ㅍ(PIEUP)’이라는 신조어를 붙인다.

“제 요리를 본 사람들은 꼭 이 이야기를 해요. 어디선가 너의 냄새가 난다. 그것이 뭔지를 잘 설명하진 못하더라도 저만의 특별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예요.”

팝업 레스토랑 ㅍ(PIEUP) 의 요리들
팝업 레스토랑 ㅍ(PIEUP) 의 요리들

이상필 셰프는 84년생 쥐띠, 올해 32살이다. 2015년 한 해도 스타지 투어를 할 계획이었으나 인연이 닿아 3~4월 두 달간 서대문구 부암동의 ILOT에서 자신의 이니셜 ‘ㅍ(PIEUP)’ 을 내건 팝업 레스토랑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요리를 선보이는 이상필 셰프의 각오는 가볍지 않다.

“내가 제일 기본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있잖아요? 이탈리아 음식이 최고라거나, 부모님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등. 저는 제가 한 요리가 제일 맛있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요리를 선보인다는 것은 곧 ‘손님만족에 깃댄 자기만족’이라고 표현한다.

이상필 셰프가 요리를 만들 때 중요시하는 것 중 가장 우선 적인 세 가지는 ‘맛있을 것’, ‘손님을 배려할 것’,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다. 다이닝 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한 한국에서 두, 세 번째의 조건이 9가지 요리가 나오는 코스요리를 먹는 경험의 가치를 설명해줄 수 있을 듯하다.

“많은 사람이 좋은 음식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식재료의 맛을 잘 살려야 한다는 것을 꼽아요. 식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리려면 식재료를 그냥 날것으로 먹으면 돼죠. 요리사는 재료의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식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사람이죠.”

이상필 셰프는 2월 중순부터 보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팝업레스토랑을 준비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한계를 맞닥뜨렸다. 9가지 코스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엔 하나의 기성품도 쓰지 않았고, 도움받을 유통업자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불은 2개밖에 없었고 접시를 데울 워머가 없어 피자 굽던 화덕으로 접시를 데운다. 7명이 모인 팀원은 불과 2주 만에 4명의 핵심멤버만 남았다. 한계는 계속 맞닥뜨리는 것이며 자신은 이를 정면으로 극복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피자 굽던 화덕을 접시 워머로 쓴다 (좌) / 9코스 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모두 100여 가지가 넘는다 (우)
피자 굽던 화덕을 접시 워머로 쓴다 (좌) / 9코스 요리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모두 100여 가지가 넘는다 (우)

“이처럼 다양한 경험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흔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도요. 저는 치열하게 기본기를 닦았고, 또 저만의 색깔을 찾아 나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요리하고 싶어요”.

담배 연기 사이로 요리학원 간판을 보며 급히 시작한 요리였지만 어느새 그 각오와 목표는 세계 수준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세상도 5년 이내로 ‘ㅍ(PIEUP)’을 인정하고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에는 가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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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 ㅍ(PIEUP)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ages/Restaurant-by-ㅍ-PIEUP/1629948817234014
– 전화: 010-3391-8139, 02-379-4003

맛은 주방장이 아닌 시스템이 만든다 – 한국 피에프 창(P.F. Chang’s) 최형진 총괄 셰프

중국집 맛이 변했다? 탓은 주방장이 뒤집어 쓴다. 손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다. “여기 주방장 바꼈어요?” 재료 탓도 아니고, 조리방법의 문제도 아니다. 당연히 주방장이 변했으리라 으레 짐작하는 거다. 당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유독 중식 레스토랑에서는 당연해진다. 그렇기에 주방장의 맛에 대한 권위는 독보적이다. 결국 중국집의 운명은 주방장의 혀와 국자에 좌우된다.

하지만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과연 될까? 많은 중식 프랜차이즈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창업 컨설팅 전문업체와 설문조사 전문기업인 코리아리서치에서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외식 프랜차이즈 중 중식 프랜차이즈 인지도가 10% 내외였다는 결과도 있었다. 한국에서 중식 프랜차이즈의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프랜차이즈 대국인 미국에서나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 중식을 논할 수 있을 정도다.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균일화된 맛과 시스템이다. 그러나 중식은 앞서 말한대로, 주방장의 요리실력에 따라 그 점포의 정체성이 정해진다. 그리고 이미 수십년간 중식은 프랜차이즈화에 어려움을 느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피에프 창(P.F. Chang’s)이 한국에 문을 열면서 그 흐름을 바꾸고 있다.피에프 창은 연매출 1조 5000억 원의 대형 중식 브랜드다. 미국에만 240개의 매장이 있으며, 전세계 40여개국에 분점이 퍼져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문을 열었다.한국에 처음으로 오픈한 롯데월드몰점에서는 오픈 초반, 일 매출 2500만원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이 30분을 넘게 기다리는 일도 비재했다. 중식 프랜차이즈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흥행인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이자, 사업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에요” 한국 운영 총괄을 맡은 최형진 셰프는 한국의 피에프 창이 왜 중요한지, 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하기 시작했다.

| 젊은 중식 요리사의 도전

최형진 셰프는 이미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 중식 레스토랑인 홍보석의 주방장을 맡았다. 중식 요리사 모임인 ‘한마음회’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는 대만, 싱가폴, 중국 등 내로라는 중식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내 최연소 중식 명사로 지정될 정도의 실력파 요리사이다.

이렇게 중식 주방장으로는 앞길이 창창했던 그가 3년간 고생을 자청했다. 피에프 창을 국내에 들여오기 위함이었다. 우리 중식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미국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해야 했고, 기존에 알던 모든 요리 방식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중식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비결이 궁금했죠.” 이런 단순한 호기심이 결국 한국에 피에프 창을 들여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도 글로벌 중식 프랜차이즈가 성공할 수 있음을 미국 본사 및 한국 외식 시장에 증명하는 중이다.
2010년 후반, 그는 미국 애리조나 피에프 창 주방에서주방 청소부터 다시 시작했다. 주방장까지 했던 요리사라면 쉽게 할 수없는 일이다. 더 고되게 느껴짐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화된 업무 방식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업무 방식에 반감도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점점 시스템의 효율적인 면을 발견했으며, 맛을 잡는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대로 지키고 있다는 점에 충격을 느꼈다.

우리 외식산업에 종사하는 인구 중 특히 중식 요리사들의 고단함은 소문으로도 익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주방에서 면을 다루고, 칼을 사용하고 나서야 불 앞에서 웍(중국식 팬)을 잡을 수 있다. 업장에 따라서는 10여년이 걸릴 수도 있다. 최 셰프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젊은 요리사들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피에프 창의 한국 입점을 준비하는 중 그들의 인사시스템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 피에프 창, 글로벌화에 성공한 이유

현재 피에프 창은 세계 각국의 트레이너 급의 요리사들이 오픈 준비에 함께 참여한다. 실제로 한국 오픈을 준비하는 40일간 두바이, 필리핀,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선발된 트레이너들이 국내 요리사들을 교육했다. 앞으로 한국 요리사가 해외 오픈 트레이너로 참여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피에프 창에는 젊은 요리사도 요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의 평균 나이가 24, 25 정도에요. 다른 한국 중식당이었으면 웍을 잡을 수 없을텐데, 교육을 받고 일하다 보니 이제는 선수들이 다 됐습니다.”


현재 롯데월드몰 점의 규모는 오픈 바를 포함해서 270석 정도다. 롯데월드 단일 층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주방은 의외로 외소했다. 요리에 필요한 최소인원으로도 80여가지의 단일 메뉴를 완성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숨어있다. 불 앞에 서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아도 모든 재료와 양념을 다룰 수 있다. 또한 모든 식재료는 매뉴얼대로 있어야 할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식재료를 다루는 요리사들도 모든 매뉴얼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몇 온스의 재료가 사용되고, 몇 cm로 딤섬을 접어야 할지도 당연히 숙지한다. 운영 총괄을 맡은 최 셰프는 팀원들의 요리방법이나 관리에 집중한다. 메뉴가 나올 때 플레이팅에 관여하는 정도가 요리의 전부다. 주방장에 좌우되던 한국 중식과 다른 점이 이것이다.

| 한국 현지화에는 성공할 수 있는가?

앞서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열었다는 설명은 본사가 한국, 특히 서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다. 창업자인 필립 치앙(Philip Chiang)은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 훌륭한 테스트 마켓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이 한국 피에프 창의 발목을 잡았다.
거대한 건물로 이슈를 만들었던 제2롯데월드 프로젝트는 안전문제라는 암초를 만나 난항을 겪고 있다. 투자되는 자본과 기술이 어마어마했고, 기대하는 이들의 시선도 비례했다. 하지만 흥행과 직결되는 안전문제가 거론되자, 기대는 풍선 효과처럼 줄어들었고, 의심과 불안은 상대적으로 더 많아졌다. 매출에 악영향을 끼친것은 당연하다. 처음 투입됐던 직원들 중 50%에 해당하는 40여명도 휴가 중이다.
아시아 교두보로 삼은 경영전략에 누수가 생긴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연달아 오픈한 코엑스 점이 선방하고 있다. 그렇다쳐도, 최 셰프는 고민이 깊다. 한번 가라앉은 소비심리가 언제 다시 회복세로 돌아설지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형진 셰프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보인다.

“피에프 창이 갖고 있는 맛과 서비스,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셰프뉴스 좌담회] 대한민국의 디저트 문화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페스트리 셰프를 준비하는 4명의 청춘에게 묻다.

지난 16일 발행된 박찬일 셰프의 칼럼 ‘해외유학 가야하나, 말아야하나(바로가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었다.

“이왕 요리 유학을 가겠다면 디저트를 전공하라. 한국의 양식당 사회에서 빵과 과자는 저평가되어있다.  빵과 과자도 고급식당의 시스템에 맞게 실력을 갖춘 이는 아주 드물다. 즉, 테이블로 서빙하는 디저트는 봉지에 넣어 판매하는 빵 과자와는 다르다. 서양의 최고급 식당은 이 분야의 실력자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식당의 품격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의 디저트문화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세프뉴스는 페스트리 셰프로 활동하고 있거나 경력을 준비하고 있는 네 명의 젊은이를 불러 모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은호(이하 ) 반갑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참여해 주신 점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셰프뉴스의 이은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눠볼 이야기는 페스트리 셰프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현재 하는 일에 대한 부분과 앞으로 전문적인 요리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내용, 한국에서 페스트리 셰프로 남기 위한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나눠보길 바랍니다. 우선, 자기소개 부탁하겠습니다.

박준완 (이하 ) 현재 페이스북에서 ‘도와줘요 달쉐프’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고요, 아프리카티비(Afreeca Tv)에서도 디저트 방송을 하는 중이에요. 나이는 27세이고요. 요리를 한 지는 6년이 되었고, 페스트리를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된 거 같네요. 호주에서 일하다가 올해 7월에 들어왔어요. 원래 건축과 학생이었는데 웨이터로 일하다가 주방에 자리가 비어서 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서승덕 (이하 ) 24살입니다. ‘화수목’이라는 업장에서 장진모 셰프와 일했었습니다. 현재는 내년에 오픈할 레스토랑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저도 건축을 전공했다가 1년 뒤 요리학과로 넘어왔습니다.

윤아영 (이하 ) 요리를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된 것 같아요. 물론 처음에는 요리할 생각이 없었는데, 요리학원에 다니고, 이태원 업장에 나가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전공했는데, 입시를 준비하면서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미술을 접고, 조리학과로 입학하게 됐습니다.

류영희 (이하 ) 요리를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예전에 일하던 업장에서는 다이닝 코스도 길고 페스트리 파트도 따로 두는 곳이었는데 당시 자리가 비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디저트 분야를 맡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지금 일하는 TocToc에서도 디저트를 주로 맡아서 일하게 됐습니다.

 

우선 용어정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디저트 셰프, 파티셰, 페스트리 셰프 등 여러 가지로 쓰이는 데 어떤 것이 가장 적절할까요?

보통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파티셰로 이야기하자면 빵을 만드는 블랑제(boulage), 초콜릿을 다루면 쇼콜라티에(chocolatier), 아이스크림 등 차가운 음식은 글라시에(glacier) 등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파티셰들이 다 하는 일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빵은 잘 못 해요(웃음).

 

| 디저트를 다루게 된 계기

다들 어떤 계기로 지금의 일을 하게 됐나요?

건축을 전공했지만, 양식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업장에 웨이터로 일하다가 주방에 자리가 생기자 요리에 흥미를 느꼈고, 돈을 모아 호주로 가서 배울 생각을 했습니다. 호주에 르 꼬르동 블르(Le Cordon Bleu)가 있다는 걸 알고 갔습니다. 뭐 영어도 안되는 상황이니, 주방 청소부터 했죠. 근데 처음에 간 업장에서 페스트리 셰프를 한국분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연히 관심도 생기고 자리가 생겨서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 단것도 좋아했고요. (웃음)

건축학과를 전공했었어요. 사실 지금 일을 하기 전에 마술도 했었고, 여러 가지 했었는데 재미를 못 느끼면서 학교만 다니다가 2년 동안 파스타 집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네요. 2년 후에 학교에 복학했는데, 그때 학교에 강사로 오신 분이 지금 롯데호텔의 제과장으로 계신 분이셨어요. 그때 존경하던 셰프님들을 봤을 때 느껴지는 아우라를 처음으로 경험했죠. 아시잖아요? (웃음) 이후 2년 반 동안 마카롱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디저트를 공부했어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화수목’이라는 업장에서 페스트리 파트를 맡게 됐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요리를 한 건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었는데, 입시를 준비하면서 흥미를 잃었어요. 마침 집 근처에 요리학원이 딱 생기더라고요. 예전부터 만드는 걸 좋아하다가 한번 다녀볼까 해서, 다녔는데 조리학과로 진학하게 됐어요. 업장에서의 경험이 많은 건 아니에요. 이태원 레스토랑에서도 일해보고 했지만, 제과제빵에 더 흥미를 느껴서 지금 업장(Dessertree)에서 1년 가까이 일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고2 때까지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했어요. (웃음) 근데 열심히 했지만, 공부만 하기는 싫었어요. 대학을 남들과 똑같이 다니고 졸업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아빠가 원래 식당과 레스토랑을 운영하셨고,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조리 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전문학교에서 서양조리 과를 전공했어요. 2년 다니다가 취업을 해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처음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원래 디저트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컬리나리아(culinaria 12538)에 자리가 생겨 콜드파트에서 일하게 됐어요. 이후에 톡톡(TocToc)이라는 레스토랑이 오픈한 지 2주 정도 됐을 때 셰프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열정을 봤고, 바로 자리 있는지 물어보고 면접을 통해 일하게 됐습니다.

 

| 페스트리 셰프만의 차별성

그렇군요. 다들 나름의 계기가 있었고, 현재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들이 일하는 다이닝에서 만들어지는 디저트와 디저트 전문점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플레이팅 된 케이크도 원래 단품에서 시작된 거잖아요? 다이닝에서 나오는 케이크이나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다이닝에서는 ‘케이크를 플레이트 위에 해체한다’고 말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네요. 어울리는 소스와 같이 나가느냐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케이크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이 있는데 보통 디저트 플레이팅을 할 때는 그것을 다 분해해서 먹기 좋고 예쁘게 하는 방식으로 나가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페스트리셰프의 포지션을 따로 두는 곳이 한국에서는 많이 없다고 들었어요. 코스로 제공되는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디저트가 식사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해서 어느 정도의 디저트 물량이 정해져 있잖아요? 하지만 단품으로 판매하는 레스토랑에서는 판매되는 양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서 디저트 종류도 많이 늘리지 못해요. 그런 상황에서 빵하고 디저트만 만든다면 오픈 전에 물량을 맞추긴 쉽거든요, 다른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일의 양이 적은 거죠. 그러면 남는 시간에 주방에서 다른 파트의 일을 도와 주워야 하는 게 한국 레스토랑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포지션보다 멀티 플레이가 요구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경력을 쌓아 다른 업장에서 일하게 될 때에도 페스트리 파트만 두는 곳은 없어서, 다른 파트의 일도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되겠죠.

외국도 사실 비슷해요. 알라카르트(à la carte) 같은 경우도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 바로 내줘야 해서 포지션이 있어야 하지만, 디저트 셰프들은 준비시간 이후에는 할 게 없어요. 그래서 가운데 비는 시간에는 주방으로 나가서 도와줘야 합니다. 실제로 다른 주방일도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는 보스들도 많고요.

멀티가 돼야 하는구나(웃음)

 

| 우리나라에서의 페스트리 셰프

이전에 박찬일 셰프님이 셰프뉴스에 기고하신 글이 있는데, 말미에 조언을 하셨어요. 그중에 ‘한식을 하라’, 그리고 ‘디저트를 하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연계해서 우리나라 실정에 대해 더 얘기해볼까요.

제가 일하는 디저트리는 디저트 레스토랑이고 할 수 있어요. 명함에도 ‘Gastronomic Dessert’라고 적혀 있어요. 손님들 중에는 디저트 카페인줄로 오해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일반적인 카페는 음료가 주가 되고 머핀이나 빵이 곁들어지는 형태잖아요? 근데 우리는 디저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샵이라서 음료는 주된 메뉴가 아니에요. 그리고 예전과 달리 디저트가 각광을 받으면서 디저트 자체가 주목되고 있는 느낌이에요. 남자분들이 혼자서 찾아오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식사하고 나서도 따로 디저트를 위해 찾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정말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네,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3년 전이랑 다르게 변하고 있어요.

업장이 많이 변하지 않고 있는 점에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디저트리(Dessertree) 같은 경우는 디저트를 주로 하니까 잘 갖춰진 면이 많자나요? 파코젯라는 장비도 있고, 오븐도 많고. 근데 아직 오븐이나 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업장이 많은 것 같아요. 페스트리만을 위한 주방이나 구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거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머랭을 말리려고 오븐을 쓰던 중에 메인 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머랭을 빼고 오븐을 양보해야 했었어요.

근데 이제 조금씩 업장에서도 변하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정식당도 이번에 리뉴얼하면서 그 구조를 갖췄다고 하더라고요. 박찬일 셰프님의 말처럼 디저트 셰프들이 전문화된 분야로 인정받고 더 확장되는 분위기는 느낍니다.

근데 우리 디저트 시장이 작을 뿐이지 일하는 사람들의 실력은 뛰어나거든요? 해외에서 대회를 열면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다들 외국으로 나가서 일하고 있어요.

맞아요. 우리나라에 잘하는 분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런 분들이 와서 일할 곳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외국 나가서 일하고 그러더라고요. 좋고 안 좋기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문화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직 우리는 한 상 문화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같아요. 근데 우리는 한번 커지기 시작하면 빨리 크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마카롱 같은 경우도 그랬고, 에클레어(Eclair)도 최근에 유행이 잘되고 있잖아요.

 

| 페스트리 셰프의 허와 실

아무래도 외국 문화다 보니 국내에 정착되면서 변하는 게 있겠죠? 실제 파티셰 모습과 비치는 모습과의 차이가 좀 있나요?

친구 중에 한 명이 제가 템퍼링(Tempering : 온도조절을 통해 카카오 버터 안에 들어 있는 지방산들을 서로 붙여 결정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어묵 만드는 일하고 뭐가 다르냐”고. 정곡을 찌른거죠.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하게 보일 뿐이에요.

맞아요. 힘들어요. 여자 같은 경우에는 환상이 많은 것 같아요.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뻐 보이고 쉽게 보이거든요. 특히 제가 일하는 곳은 오픈되어서 처음 보면 쉽게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손님들이 보는 1층에서는 예쁘게 플레이팅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진짜 작업은 지하 작업장에서 하거든요.

그거는 보여주기 위한 쇼-베이킹(show- baking)이죠. 뒤에서는 밀가루 포대 나르면서 땀흘리는데(웃음)

낑낑대면서 설탕 옮기고, (웃음) 근데 디저트를 시작하면서 느꼈지만 정말 위험한 작업들이 꽤 있거든요? 특히 카라멜라이징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온도가 180℃ 정도 되는 설탕은 뜨거운 물에 데는 것과 달라요. 물에 적시면 안 되고 바로 병원에 가야 돼요. 잘못하면 피부에 완전히 달라붙거든요.

진짜 위험하죠. 예전에 같이 일하던 헤드셰프가 실수로 녹여놓은 설탕을 물인 줄 알고 옮기다가 손에 쏟았어요. 그래서 손 전부에 화상을 입은 것도 봤어요.

일반인이 갖는 환상 때문에 주방을 소재로한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말한 것처럼 위험한 작업이라든지, 힘든 일을 처리하는 건 안 나오잖아요. 게다가 여자 한 명에 다 남잔데, 다 키도 크고 잘생긴 줄 안다는 거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웃음)

 

| 어떻게 해야 좋은 페스트리 셰프가 될 수 있는가?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좋은 페스트리 셰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막 시작하는 여러분이 현장에서 느꼈던 바를 기초로 이야기 해 볼까요?

저는 좋은 셰프가 되는 것과 일을 잘하는 셰프가 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디저트 셰프들도 나눠보면 만능으로 모든 디저트를 다 잘 다루는 분이 있는 반면에 레스트랑 안에서 메뉴 구성 같은 자신만의 철학을 잘 담아내는 셰프도 있잖아요. 어떤 셰프가 되고 싶은지 먼저 기준을 잘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다른 셰프님과 얘기를 하는게, 디저트만 하던 데서 일하던 분이 레스토랑에서 일해도 잘할 거라 봐요. 비록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디저트 전반을 다룰 줄 알고 난 이후에 다름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몸값을 올린다는 개념으로. 홀에서도 일해보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앞에서 말씀하신 다른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앞으로 더욱 전문적이고 차별적인 페스트리 셰프가 되려면 다른 식재료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죠. 더욱이 요즘에는 식재료에 대한 경계가 뚜렷하게 갈리는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디저트를 한다고 한정된 식재료만 사용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다른 요리를 알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하지만 디저트 셰프가 되고 싶다면 일단은 혼자서 해보고 연구해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일단 디저트를 다루는 식재료 종류가 많잖아요? 설탕이나 소금이 그렇고, 소스도 그렇고요. 알면 알수록 할 게 많은데, 그런 부분들은 그냥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배워가야 할 부분이겠죠.

네. 이 정도로 모든 대화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만간에 멋진 활약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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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이은호

패널

박준완 – 아프리카tv와 페이스북 채널(도와줘요 달셰프) 운영
윤아영 – Dessertree 소속
류영희 – TocToc 소속
서승덕 – 전)화수목 소속, 레스토랑 오픈 준비

정리/사진 이인규